Out of Poverty : 적정기술 그리고 하루 1달러 생활에서 벗어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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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적정기술을 처음 접한 것은 모 사이트를 통해서 보게된 Q 드럼이 계기였다.

마실물을 구하기 위해 수십 수백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아이들, 거기에 무거운 물통을 지고 걷는 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이를 해결해주는 마법같은 디자인(설계)이 있었으니 그것이 Q드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접하게 된 "전세계 설계자는 그들의 시간 대부분을 구매력 있는 10% 미만의 소수 소비자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폴 폴락의 이야기는 뇌전처럼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http://www.bloter.net/archives/43250)

 

이것이 바로 사회복지의 개념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한 링크에 따르면, 적정기술은 ‘고액 투자가 필요하지 않고, 에너지 사용이 적으며,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고, 현지 원재료를 쓰며, 소규모 사람들이 모여 생산 가능한 기술’이라고 한다.

 

세상의 문명과 각종 혜택에서부터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쓰이는 기술 "적정기술"

 

그 첫번째 책이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디자인(원제 : Design fot the Other 90%)"이라는 책이다.

하지만 현재 절판되었으며, 중고 가격은 이미 기존의 새책 가격의 2배에 달한다.

그러다가 찾게 된 두번째 책이 바로 아래 책이다.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디자인: 도시편

저자
스미소니언연구소 지음
출판사
에딧더월드 | 2012-11-0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디자인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디자인과 도...
가격비교

 

아직 나도 구해보지는 못했으나, 마을만들기 등이 붐처럼 일어나고 있는 지역사회복지현장에서 의미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서 가슴을 때렸던 한마디 경구를 남겼던 폴 폴락의 저서를 찾게 되었다.

 


적정기술 그리고 하루 1달러 생활에서 벗어나는 법

저자
폴 폴락 지음
출판사
새잎 | 2012-06-0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저자 폴 폴락 강연회 및 사인회] 1. 서울디지털포럼2012(...
가격비교

 

그 문장이 실린 책이 바로 'Out of Poverty(2008)'라 한다.

바로 이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었다. (원제 : Out of poverty: what works when traditional approaches fall)

이 책은 과거의 후원자 중심 접근이 더이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탈빈곤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빈곤을 대하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update. 2013. 10. 12 -------------------------------------------------

드디어 폴 폴락의 책을 다 읽었다.

계속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약간의 지루함을..

그리고 하루 1$로 생활하는 이들이 아닌,

우리 같은 나라의 도시 빈민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분명 가능하다고 하는데, 내가 갖는 지식과 경험의 한계는 물음표를 던진다.

어쨌든 한번더 생각해 볼만한 부분은 있을 것이다.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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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복지사 안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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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존슨 카운티 정신건강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테리 제너(Teri Zenner)가 2004년 8월 17일, 클라이언트의 집을 방문하는 일상업무 과정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사회복지사의 안전위협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07년, Teri Zenner Social Worker Act라는 사회복지사안전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해당 관계 법령을 검색해 보았다. 법의 전문은 아래 PDF 파일과 같다.

 

[111hr1490ih] Teri Zenner Social Worker Safety Act.pdf

 

영어로 되어 있기에 해당 내용을 부족하나마 번역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비법률전문가인 관계로 일부 오역 등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Teri Zenner Social Worker Safety Act 2009.pdf

 

주요내용은 간략하다.

사회복지사의 폭력피해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회복지사 안전제도를 위한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법령이다.

 

기금을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는,

1. GPS 장치 등 사회복지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통신장비의 지원

2. 자기 방어를 위한 훈련 지원

3. 시설의 안전 개보수 지원

4. 후추 스프레이(가스총) 지급

5. 안전확보를 위한 각종 교육과 훈련

등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회복지사의 안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잇단 사회복지사의 자살사고 소식을 접하는 요즈음, 사회복지사의 안전 확보를 위한 제도적 안전망이 담보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법이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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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H할머니의 사무실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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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할머니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으십니다.
왼쪽귀도 어두워 가까이 대고 크게 말씀을 드려야만 알아들으시지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복지관을 힘겹게 올라오셨습니다.

 

"사무실에서 뭐 나온거 있다고 했다하던데.."

 

밑도끝도없는 한마디에 사회복지사들이 분주해집니다.

 

사실 사회복지관 직원들이래봐야 10명 남짓이 고작이지만, 제공되는 서비스가 많고 분야가 다양하다보니 다른 복지사의 대상자 현황까지 모두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남자가 전화했어요? 여자가 전화했어요?"
"몰라~"

 

혹시 다른 직원이 전화해서 서비스 제공을 약속드린건 아닌가 해서, 허겁지겁 전화를 돌리고 물어서 찾아보지만 우리 복지관에서 나가기로한 서비스 약속은 아닌거 같습니다.

 

이때부터 할머니 주위로 사회복지사들이 모여서는 할머니의 '사무실' 찾기를 시작합니다.

 

"혹시 관리사무소는 아니에요?"
"어? 이쪽은 안들려. 이쪽으로 얘기해~"
"관리사무소에서 전화한건 아니냐구요?"
"갔다 왔어. 거긴 아니라고 복지관 올라가 보래~"

 

관리사무소는 그냥 "아닙니다. 복지관 가보세요" 한마디로 우리에게 미루는 것으로 끝납니다.

 

"동사무소는 아닐까요?"
"몰라~"

 

계실 때 전화해서 확인하는게 필요할 듯하여, 부랴부랴 주민센터로 전화해서 H할머니께 연락드린 일이 있는지 수소문해 보지만 역시 거기도 아닙니다.

 

이쯤 되면 찾아주신 할머니도 슬슬 화가나시지 않을까요?
이리가면 저리가라하고, 저리가면 또 이리가라하고...
하지만 우리도 답답하긴 매한가지! 추측해 내기엔 너무나 정보가 적습니다.

 

물론 오늘 H할머니는
"아이고, 바쁜데 미안합니다."
하시며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제가 다 안타까워 엘리베이터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혹시라도 알게 되면 꼭 다시 연락드릴게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리가라 저리가라에 지치셔서 저희에게 화를 버럭 내는 분도 계십니다.

 

"사무실이면 여기 아냐? 왜 몰라!"
"관리사무소에서 여기라며!!"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복지관의 계단을 올라오셨는데, 역정을 내시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됩니다.

 

오늘 H할머니의 사무실 찾기는 끝내 실패입니다.

 

하지만 H할머니의 사무실만이 아니지요.

 

"오늘 놀러간다매?"
"차 타로 이리 오라카던데"
"선물 준다꼬 받으러 오라던데 여(기) 아이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정확히 모른채 복지관을 찾아주시는 어르신들을 뵈면 양가감정이 듭니다.
그래도 복지관이라고 찾아주신데 대한 감사한 마음과 찾는 곳이 여기가 아닐 때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
그리고 혹여나 복지관을 사칭하는 이상한 곳에 따라다니시다가 속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함.

 

"아닙니다." 한마디면 될텐데, 내 일도 아닌데 어르신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손발이 되어주는 사회복지사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노력이 분노와 역정으로 되돌아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회복지사.

 

그들은 분명, 다음에는 꼭 "사무실"을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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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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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들어서만 네번째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있다.
이런 기사들이 나면, 나는 다른 것보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싶어 댓글들을 먼저 확인해 보곤했다.

 

한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
자살선택에 대한 부정적 해석,
사회복지전담공무원에 대한 입장 옹호,
일을 그만두지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질타섞인 의문,
사회복지사만 응시할 수 있는 전담공무원의 직위에 대한 분노,
남겨진 혹은 관련된 자의 입장에 대한 옹호섞인 우려..

이 모든게 댓글 속에 버무려져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것인가?

 

......

 
여러 생각들의 홍수 속에서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름아닌 생명의 존귀함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존귀하다는 생명, 그 생명을 스스로 끊기까지의 고통을 생각하면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가 가장 먼저여야한다. 죽음은 누구나 피하고자 한다. 그 누구도 신나서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분명 그 죽음은 피치 못할 여러 상황 속에서 내몰린 끝에 내린 최후의 발버둥이었으며, 아우성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타인을 돕는 일을 천직으로 선택한 이의 선한 죽음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모든 것에 앞서 그 죽음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이어 아쉬운 정부의 대응이다.
한 직종에서 연속적인 자살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해당직종에 대한 중대한 위기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문제는 명백했다. 부족한 인력, 체계적이지 않은 업무,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에게 쏟아지는 업무의 깔때기 현상, 과도한 민원인의 폭력 등이 산재한 현황이며, 그로 인한 과도한 업무스트레스는 결국 여러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는 수당인상, 가스총 지급 등의 초라한 대응을 대안이라고 내어놓았다. 필요한 것은 보다 철저한 원인분석이며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의 마련이다. 지금 이순간도 사회복지사는 온갖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계는 통렬히 반성해야한다.
사회복지사의 선한 죽음 앞에, 애도에 앞서 먼저 등장하는 여러 부정적인 반응을 볼 때면, 그간 우리는 국민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나 악플러를 욕하기에 앞서 안타까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옹호를 받지 못하는 우리의 위치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이게 선행되지 않는다면, 제5, 제6의 안타까운 죽음을 우리는 국민의 냉혹한 시선속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4월 소방공무원에 대한 '안전수칙 위반자 벌점제[각주:1]'가 큰 국민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에 반해 우리의 위치는 아직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국민, 정부, 사회복지계 모두 솔직한 담론을 통해 반성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우선 정부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자체를 개선해야한다. 복지와 사회복지는 엄연히 다르다. 복지와 사회복지를 구분하지 못함에서 소위 깔때기 현상이 생겼으며, 현장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업무과중을 초래했다. 철저한 업무분석을 통해 업무를 체계화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인력배치와 업무분장을 실시해야할 것이다.

 

한편 민간 사회복지현장에 비해 공공기관의 사회복지업무는 그 업무의 특수성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슈퍼비전 체계를 갖추고 있지못하다. 짧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역사로 인해 사회복지업무를 전담한 고위 공무원이 없는 현실에서 어떤 사회복지전문직에 대한 선배들의 슈퍼비전이 없는 채 대학 동안 혹은 일부 자격취득 만을 위해 배운 짧은 학문적 지식만 가지고 여러 클라이언트를 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보다 많은 교육의 기회와 슈퍼비전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업무가 갖는 이면의 위험적 요소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안전망 확보를 위한 제도 마련에 힘써야할 것이다. 이는 일부 폭력적인 클라이언트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위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정보를 다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와 인권의 보호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서비스는 결코 폭력과 협박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클라이언트의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지금껏 우는 아이 젖준다는 속담은 불변의 진리처럼 사용되어 왔다. 물론 사회복지는 온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그것의 획득은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폭력과 협박은 오히려 사회복지권에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끝으로, 무엇보다 사회복지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고 그것이 사회적 선의(Good Will)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임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는 그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며,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필요한 영역에 대해 그를 대신하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전문직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로 한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는 바로 그 역할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인적 선의도 중요하지만, 집단으로써의 사회복지사는 분명 하나의 노동자 집단이며, 그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이 필요한 직업임에 인식을 같이해야한다. 그 이후에야 사회복지사의 처우문제는 제대로 된 관점에서 달리보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3/04/15 - [[정보] 복지 이야기/[談] 복지비틀기] -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1. 지난 4월 소방방재청의 소방공무원 보건안전관리 규정(제21조)에 따른 '안전수칙 위반자 벌점제'의 실시가 이슈가 되 었었다. 현장 소방활동중 부상ㆍ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안전수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견책과 감봉, 정직 등에 처 하며, 소방대원의 순직시 함께 출동한 대원들이 견책 처분을 받게 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 었다. 이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선한 직업이기에 더했으며, 이들에 대한 행정편의적 부당한 처우에 국민은 함께 분노하고 성토했었다. 이에 5월 14일 소방방재청은 벌점제 폐지 및 규정의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에 이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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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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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나 사탕 좀 줘어~”
두 손을 포갠 채 아이처럼 벌리고는 나만 보면 사탕을 달라시며 씨익 웃으신다.
주름진 그 미소 사이로 담배 때문인지, 사탕 때문인지 온통 썩어버린 이가 보인다.
“할매, 담배 피지 말라니까~”
“안펴어~, 안필랑께 입이 심심해서 그랴~, 사탕 좀 줘어~”
“옆에 할매들이랑 노놔 묵을랑께 더줘어~”

 

“행님!! 바쁘네요?”
반짝 든 왼손과 함께 미소 지으며, 언제부턴가 장애가 있는 이 동네 청년은 늘 나에게 ‘행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하던 이 호칭이 어느새 익숙해져 있다.

 

“선생님, 좋아요?”
늘 자기가 좋아한다는 얘기를 의문형으로 말하는 이 친구는 지적장애인이다. 하지만 늘 밝게 깔깔 웃으면서 기분 좋은 애정표현을 한다.
이 이상한 사랑고백에 절로 입가에 스미는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샘예~ 이것 좀 자시보이소”
노인일자리 월급 받으셨다고, 복지관 직원들에게 기분좋게 한턱 쏜 요구르트는 무척 달콤하다.
“어머니~ 그냥 어머니 드세요”
거절도 해보지만, 다음달에도 할머니는 요구르트 한줄을 사들고 오실테다.

 

사회복지사를 힘나게 하는 클라이언트, 어쩌면 나를 진짜 천사가 되고 싶게 만들어주는 이들이 우리 동네에 있다.
한편, 사회복지사를 힘들게하는 이들도 역시 클라이언트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

 

“느거 하는 일이 뭐꼬? 콤퓨타 뚜드리 바라. 다 나온다 아이가?”
아침 댓바람부터 거나하게 취한 동네 아저씨는 술 한잔하니 밥 생각이 난다며, 어르신들만 이용하는 경로식당에서 밥 달라고 난동이다.

 

느닷없이 휘둘러진 목발에 모니터가 깨어지고 책상 위 서류들이 흩날린다.
“고마 콱 죽어뿌까? 이 다리마저 뽀사뿌믄 해주나?”
해당되지 않는 서비스를 달라며 한시간 넘게 계속되는 막무가내 우기기와 드잡이질에 몸도 마음도 멍이 든다.

 

“야이 XX야, 삐~~~를 삐~~해 뿔까”
오늘도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며 풀 곳 없는 한탄을 사회복지사들에게 쏟아낸다.
깨진 술병을 휘두르며 가해지는 위협은 이해와 공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생전 처음듣는 여러 욕설이 난무하고, 각종 폭력과 죽임에 대한 협박까지 듣게 되면, 말뿐임을 알고 있어도 이건 당췌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린 여자 사회복지사에게 행해지는 각종 성적 폭언들과 성폭행에 대한 위협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보려해도 결코 위로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이럴 때면 애써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이 선배로서 한심스러워진다.
그들을 향해 차마 싸우지는 못하고 열중쉬어 자세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젊은 사회복지사의 분노를 보며, 때로는 참다참다 펑펑 눈물 흘리고야마는 어린 사회복지사를 보며, 선배 사회복지사들이 그러했듯 더 단단히 영글어 갈 것을 믿지만, 차마 피지도 못하고 갖은 생채기에 시들어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어도 해줄 말이 마땅치 않다. 그 와중에 그들의 분노가 클라이언트로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된 감정을 느낄 뿐.

 

오늘도 고래고래 소리치며 싸우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복지관 앞에 버젓이 벌려놓은 술판에는 마음이 상한다.
그 사이, 돌잔치를 앞둔 내 아기는 인후염이 중이염이 되고, 다시 폐렴이 되어 입원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소식도 휴대폰 수화기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이 뒤섞인 채 오늘도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로서의 내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그들 또한 변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보이는 행복한 이들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꼬마였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스무살 숙녀가 되었고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는 자랑에 내 일마냥 기쁘기 그지없다.
동네 형아에게 ‘삥’ 뜯긴다고 울며 찾아오던 아이는 어느 새 군인이 되었으며 첫 휴가 나오자마자 복지관 들러서는 올려붙이는 늠름한 거수경례에 만원짜리 몇장 쥐어주며 등 두드린 두 손으로 대견함과 뿌듯함이 전해져 가슴이 벅찬다.

 

그 어떤 일보다 사람과 함께 하기에 웃음과 울음, 애정과 분노가 공존하는 일
좋은 일이라는 미명하에 타인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권은 쉬 무시되는 직업
많고 힘든 업무에 시달리며, 감정노동에 소진을 경험하지만 정작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직업

 

그럼에도 많은 사회복지사들은 이 일이 천직이라고 여기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소명을 다하고 있다.
어느새 어려움이 있을 때면 사회복지사를 찾는다는 것은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그것을 요구하는 방식에 있어 범죄와 다름 아닌 가장 낮은 수준의 폭력과 큰소리로 우겨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려는 모습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이에 분노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려고 하고,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함께 울고 웃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이다.
지금껏 사회복지사는 국민(지역주민)을, 클라이언트를 인정하고 대변해주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기반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국민(지역주민)을 위해 클라이언트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거짓이 없다면, 이제는 역으로 그들이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사회복지사를 인정해줄 수는 없을까?
단지 믿어만 준다면, 그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의 곁에 서 있기를 피하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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