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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7:45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1
- 2026.09.04 두 가지 생각
- 2026.08.25 AI 리더십
글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3
느린 스마트(Slow Smart)
― 기술을 사람의 삶에 맞추는 사회복지적 디지털 전환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할 때 자꾸 속도를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했는가?
얼마나 최신의 시스템을 갖추었는가?
AI를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가?
얼마나 많은 업무를 자동화했는가?
성과를 이야기할 때도 비슷하다.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가?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었는가?
처리량이 얼마나 늘었는가?
이런 지표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복지에서 이것만으로 디지털 전환을 평가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최근 이 질문에서 ‘느린 스마트(Slow Smart)’라는 개념을 고민하고 있다.
느린 스마트는 기술을 천천히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느린 스마트라는 말은 기술을 무조건 느리게 도입하자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기술의 속도를 사람의 삶의 속도에 맞추자는 것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느린 스마트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느린 스마트(Slow Smart)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제공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한 사람의 삶과 필요에 맞게 천천히 조정하고 개인화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에게 더 유용해지도록 만드는 사회복지적 디지털 전환의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리다’가 아니라 ‘사람에게 맞춘다’는 것이다.
왜 최신 기술이 항상 좋은 기술은 아닐까
노인복지 현장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쉽게 만난다.
새로운 기기가 들어온다.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용자는 그 기기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버튼이 너무 작다.
화면이 복잡하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손이 떨려 정확하게 터치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능을 배운다고 해도 몇 주 뒤 잊어버린다.
기술은 좋아졌는데 사람에게는 더 어려워진다.
이때 우리는 흔히 이용자에게 다시 배우라고 한다.
‘디지털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반복해서 사용하면 익숙해집니다.’
‘요즘에는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다.
왜 사람이 기술에 맞춰야 하는가?
기술이 사람에게 맞춰질 수는 없는가?
좋은 기술은 사용자를 바꾸는 대신 환경을 바꾼다
예를 들어 손이 떨리는 사람이 있다면 버튼의 크기와 간격을 조정할 수 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반복적인 안내나 알림을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기기를 사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오래된 태블릿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것은 첨단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술의 수준이 아니다.
그 기술이 그 사람에게 맞느냐이다.
나는 이것이 사회복지에서 말하는 개인화와 디지털 전환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개인화 서비스를 이야기하면서 더 정교한 AI, 더 많은 데이터, 더 높은 정확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개인화의 본질은 어쩌면 훨씬 단순하다.
한 사람의 특성을 알아차리고, 그 사람에게 맞게 환경을 조금씩 바꾸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술은 훨씬 인간적이 될 수 있다.
느린 스마트는 '새로운 것'보다 '이미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일이 되어버리기 쉽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새로운 기기를 사고,
새로운 앱을 설치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오히려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이미 있는 기술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오래된 태블릿이 있다면 그것을 다시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필요한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기존 시스템의 불편한 부분 하나만 개선할 수도 있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새로 만드는 대신, 종이로 하던 한 가지 절차만 디지털화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실제로 불편해하는 한 지점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느린 스마트는 혁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의 단위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느린 스마트는 기술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계한다
기술 중심의 디지털 전환에서는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
느린 스마트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한다.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어려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기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순서가 다르다.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느린 스마트에서는 기술의 성능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한 번에 완벽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서 고친다.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넣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능부터 시작한다.
사람이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계속 조정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점점 그 사람에게 맞아간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한 도구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하고 유용한 생활의 일부가 된다.
기술이 사람에게 적응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디지털 전환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많이 이야기했다.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를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활용하고,
AI를 도입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기술을 도입했는데 이용자가 더 불편해진다면?
업무는 빨라졌는데 관계가 줄어든다면?
데이터는 많아졌는데 당사자의 목소리는 작아진다면?
AI는 더 정확해졌는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디지털 전환의 성공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의 발전을 증명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느린 스마트를 이렇게 생각한다.
빠른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기술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필요한 기술
사람을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
한 번에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서 계속 조정하는 것
결국 느린 스마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술을 늦추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앞세우자는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은 기술도, 더 빠른 기술도, 더 복잡한 기술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가장 좋은 기술은 사람이 기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사람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 전환의 질문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무엇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가?에서
이미 있는 것으로 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로.
그리고 결국,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더 좋기 때문에 만드는 것.
나는 그것이 사회복지에서 이야기하는 디지털 전환의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고민하고 있는 ‘느린 스마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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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2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 바이브 코딩 시대의 사회복지 기술윤리
이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예전처럼 어렵지만은 않다.
과거에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고, 개발환경을 구축하고, 데이터베이스와 서버를 이해하고, 오류를 하나씩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바이브코딩이라는 방식은 자연어로 원하는 기능을 설명하고 AI와 대화하면서 실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이제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간단한 업무도구나 신청 시스템, 기록 보조 프로그램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분명 좋은 변화다.
그동안 개발자에게 의존해야 했던 현장의 작은 문제들을 직접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기술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기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질수록 윤리의 진입장벽도 낮아져야 한다
기술을 만들기가 어려웠던 시대에는 개발자의 전문성이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했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나 상당히 쉽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다만 기술 쉬워졌다는 것이 단순히 개발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기술을 만드는 주체가 넓어졌다는 뜻이며, 이는 기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책임 역시 더 많은 사람의 몫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윤리적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만드는 기술이 사람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기관에서 AI를 활용해 이용자의 상담기록을 요약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자.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무엇을 물어야 할까?
개인정보가 안전한가?
당사자가 자신의 정보가 AI를 통해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AI가 잘못 요약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민감한 정보가 불필요하게 수집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AI가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원래 하지 않았던 감시나 평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술이 가능해지면 우리는 자꾸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이제는 거기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함께 붙여야 한다.
효율성은 좋은 가치지만, 유일한 가치가 아니다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효율성을 떠올린다.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고,
오류를 줄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사회복지기관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율성은 목적이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직원의 업무를 자동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하자.
업무량을 자동으로 계산하고, 응답 속도를 측정하고, 상담 횟수를 점수화하면 관리자는 훨씬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사회복지의 가치는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 이용자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준 시간이 실적에는 잡히지 않을 수 있다.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신뢰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데이터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기술은 측정하기 쉬운 것을 중요하게 만들고, 측정하기 어려운 것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함께 들어가는 과정이다.
더 정확한 기술이 언제나 더 좋은 기술은 아니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해 판단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AI가 복지서비스의 위험도를 예측한다고 하자.
기술의 정확도가 95%라고 하면 우리는 상당히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5%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묻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취약한 사람을 잘못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반대로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
더구나 AI의 판단이 기존 사회의 편견과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라면, 기술은 기존의 편견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반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AI를 도입할 때는 단순히 '정확도가 얼마나 높은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
누가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잘못된 판단을 되돌릴 수 있는가?
사람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남아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기술이 정확할수록 오히려 그 결과를 더 쉽게 믿게 된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사회복지사가 기술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는 바이브코딩이 사회복지 현장에 중요한 이유가 단순히 개발비를 줄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의미는 현장의 사람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기술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사회복지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개발자에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세요.”라고 요구했다면,
앞으로는 사회복지사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는 동시에 작은 의미의 ‘기술 설계자’가 된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그래밍 능력만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 권리를 판단하는 능력, 위험을 예측하는 능력, 필요와 편의를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는 바이브코딩 시대의 사회복지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이 기술의 영향을 받는가?
누가 배제될 수 있는가?
어떤 정보가 수집되는가?
이 정보는 정말 필요한가?
덜 침해적인 방법은 없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
이 기술이 없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가?
모든 문제에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기술 자체에 매료되기 쉽다.
AI를 사용할 수 있으니 사용하고,
자동화할 수 있으니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모을 수 있으니 모으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니 만든다.
하지만 사회복지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존재가 아니다.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이 달라지는가이다.
사회복지의 기술은 사람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고, 더 안전하게 지원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바이브코딩 시대에는 질문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예전에는 [ 문제 → 기술적 해결책 ]이었다면, 이제는 [ 문제 → 기술이 정말 필요한가 → 필요하다면 어떤 기술인가 →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의 순서가 되어야 한다.
기술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큰 기회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만들지 않을 수 있는 판단력이다.
결국 기술의 성숙은 더 많은 것을 만드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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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1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 생체정보 근태관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다.

최근 한 지침(위 사진)을 보다가 생각이 많아졌다.
시간외근무를 인정하기 위해 지문인식 등 신체 일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통한 인증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관리하려는 것이니 필요한 것 아닌가?’
지자체나 법·제도가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있고, 현장에서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확한 근태관리는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조직과 노동자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다른 질문이 생긴다.
정확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모든 수단이 정당하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와 정책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선택했는지, 그 수단이 필요한 정도를 넘어 사람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노동자는 관리의 대상이기 전에 권리의 주체다
우리는 노동을 너무 익숙하게 생각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계약에 따라 일을 하고, 그 시간만큼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를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만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여러 권리를 가진 주체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이 권리인 이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태관리는 단순한 행정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은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권한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의 모든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근태관리를 위해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 어떤 정보를 수집할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관리할 것인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한 문제다.
특히 지문이나 얼굴과 같은 생체정보는 일반적인 비밀번호나 카드정보와 성격이 다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역시 생체정보에 대해 별도의 보호와 안전한 처리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의 「생체정보 보호 안내서」도 이러한 정보의 안전한 처리를 위한 점검사항을 별도로 안내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바꿀 수 있다.
카드를 잃어버리면 재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문은 바꿀 수 없다.
물론 생체정보가 유출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실제 시스템이 생체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저장하고 처리하는지에 따라 위험의 정도도 달라진다. 그러나 한번 노출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생체정보의 특성 자체가 더 높은 수준의 보호를 요구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정확한 근태관리라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노동자의 신체적·인격적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선한 목적이라고 해서 선한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것은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이었다.
물론 생체정보를 이용한 근태관리를 곧바로 ‘차별’이라고 규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영역이다.
다만 그 책이 던지는 중요한 문제의식은 여기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해치려는 악의가 없었다는 것과, 그 결과가 정당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지자체나 기관이 노동자를 괴롭히기 위해 지문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정한 시간외근무를 막고, 근무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며,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
좋은 의도와 정당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수단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기 쉽다.
‘정확하게 관리하려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직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데 왜 문제가 되는가?’
하지만 공정하게 적용되는 제도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한 제도인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불편을 주는 것이 공정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 불편을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별도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이 수단까지 사용해야 하는가?
목적과 수단은 따로 판단해야 한다
정확한 근태관리는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시간외근무를 했는데 기록되지 않거나, 하지 않은 근무가 인정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정확하고 공정한 근태관리는 노동자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목적이 정당한가와 그 수단이 정당한가는 별개의 질문이다.
그리고 수단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는 몇 가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목적은 정말 정당한가?
둘째, 이 수단은 정말 필요한가?
셋째, 같은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덜 제한하는 방법은 없는가?
넷째, 그 수단을 통해 얻는 편익과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다섯째, 내가 그 제도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 기준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은 존 롤스의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조직의 관리자일지, 노동자일지, 혹은 그 제도를 가장 불리하게 적용받는 사람일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이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롤스에게 무지의 베일은 개인의 사회적 위치나 이해관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원칙을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보다 공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이 질문은 의외로 현실적인 판단에 도움이 된다.
‘내가 관리자라면 이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라면 그래도 같은 기준을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관리의 편의를 누구에게 전가하고 있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고 싶다.
이 제도를 통해 편의를 얻는 사람과 부담을 감당하는 사람은 같은가?
조직 입장에서는 정확한 기록이 필요하다. 행정적으로도 일관된 시스템이 편리하다. 지문인식은 여러 방식 가운데 비교적 명확한 인증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조직의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에게 생체정보 제공이라는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의 비용과 불편을 누구에게 부담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직이 관리하기 편한 방법이라고 해서 그 편의를 노동자의 개인정보와 신체정보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조직의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나는 사회복지 현장이라면 이 질문을 더 민감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는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돕기 위한 실천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어떤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근태관리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DX)을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효율성을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해왔다.
더 빠르게 처리하고,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더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물론 중요한 가치다. 조직은 효율적이어야 하고, 사회복지기관 역시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더해야 한다.
이 기술은 얼마나 효율적인가?
에서 멈추지 않고,
이 기술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를 물어야 한다.
기술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는 사실과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해도 된다는 것 역시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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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두 가지 생각
첫번째는 사회복지원론에 대한 고민입니다.
2012.03.29 - [[楞嚴] 생각 나누기/[談] 복지 비틀기] - 유클리드와 사회복지학
유클리드의 원론처럼 사회복지학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단 하나의 명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를 뒷받침하는 공리는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가?
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왜 차별하면 안되는가?
왜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하는가?
사회복지에서 사회정의는 무엇인가?
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면 사회복지는 왜 존재해야하는가?
사회복지사가 타인의 삶에 개입할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쉽게 칸트적으로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가치는 동등하다."으로 수렴할 수 있겠지만 현장 사회복지사로서는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 존엄은 현실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가 만드시 들어가야만 하는게 아닐까요?
한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이 되겠군요.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동등한 가치를 가진 존재이며, 사회는 모든 사람이 그 존엄을 실제 삶에서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두번째 떠오른 생각은 "사회복지실천에서 선의는 어디까지 보호될 수 있는가?"입니다.
출발은 선한 사마리안 법입니다.
사회복지사의 족쇄가 되는 여러 제도들을 보면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처우개선법이 수당 몇시간 추가하는 것에 목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고작 우리 수준인가 하는 답답함이 치밉니다.
어짜피 사회복지는 기존 제도의 결함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가 우리의 목줄을 죄고 있는게 맞는 방향성일까요?
선의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행동한 사회복지사의 행동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타인을 도우려 할까요?
정보는 불완전하고 도움은 시급합니다.
물론 사회복지사에게 면책특권을 주자는 발상은 아닙니다.
합리적인 선의에 실천에 대한 안전지대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선배 사회복지사의 소명이다라는 생각입니다.
후배들이 방어적 사회복지를 하도록 사고가 갇히고 손발이 묶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구조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 사회복지사를 보호하는 것, 결과 편향으로 책임전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책임의 공공화를 만들어 가는 것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그 순간, 책임있게 도움을 주려는 행위가 지속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26. 8. 26.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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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리더십
AI는 만들고, 리더는 판단한다
사회복지시설의 DX·AX를 이끄는 리더십
들어가며
◆ “우리도 AX 하고 싶은데, 누구 시키면 될까요?”
사회복지 현장에서 DX, AX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우리 복지관(시설)도 하고 싶긴한데, 누구한테 시키면 좋을까요?”
저는 이 질문 자체가 DX와 AX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린 새로운 사업 하나가 생기면 담당자를 정합니다. 그래서 DX나 AX도 새로운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누구에게 시킬까?”부터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남들이 하는 걸 보니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가 잘 떠오르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누군가 잘하는 사람이 차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그런데 DX·AX를 이야기하면서 기술 그 자체보다 더 어려운 것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시설장은 오랫동안 조직에서 판단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해오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기술을 만났을 때“나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외려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과 사회복지의 언어로 빨리 전환하면서 “아, 그건 결국 이런 거네.”라고 이른 결론을 내리려합니다.
그 설명이 반드시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순간 새로운 것을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기존의 틀 안에 넣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모른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르는 상태에 머물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교육학에서는 기존의 사고방식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의 문턱을 넘고나면 대상을 이전과 전혀 다르게 보게되는 개념을 “문턱개념(Threshold Concept)”라고 부릅니다. 한번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간단해 보이지만, 그전에는 기존의 사고방식 자체가 이해를 막기도 합니다.
“DX·AX를 시작하려면 기술의 문턱보다 먼저 생각의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DX·AX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전자결재를 도입하면서도 종이결재 방식으로 생각하고, AI를 도입하면서도 기존 업무에 도구 하나를 더 얹는 식이라면 기술은 달라져도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DX·AX는 새로운 기술을 하나 더 얹는 일이 아니라,기술을 계기로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DX·AX를 특정 직원에게 맡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설장이 모든 기술을 직접 이해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판단의 책임은 놓지 않는 것입니다.
DX·AX의 출발점은 리더 그리고 그의 결정이어야 합니다.
▪ 우리 조직은 왜 바뀌어야 하는가?
▪ 무엇을 바꿀 것인가?
▪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서 무엇을 그만둘 것인가?
▪ 기술과 현실이 충돌하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 그리고 이 변화가 결국 누구를 향하게 할 것인가?
저는 이것이 AI 시대 변화를 원하는 사회복지실천 현장에 요구되는 새로운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Ⅰ. 방향을 정하는 리더
◆ “우리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
1.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AI로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DX·AX를 했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AI가 완벽히 대신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망치를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AI를 배웠다고 모든 문제를 AI로 해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이브 코딩을 배웠다고 프로그램부터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DX·AX의 출발점은 Technology가 아니라 Problem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이 상담을 한 번 했는데 같은 내용을 상담일지, 사례회의 자료, 실적보고서에 반복해서 입력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때 물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같은 정보를 세 번 입력하고 있는가?”
기술은 그 다음입니다.
자료를 한 번만 입력하고 필요한 문서를 자동으로 만들 수 있는지, AI가 상담기록을 정리하고 사람이 확인하도록 할 수 있는지, 기존 서식 자체를 줄일 수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가 먼저입니다.
2. 전자결재를 도입했는데 “출력은 어떻게 하죠?”
또 하나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그럼 출력은 어떻게 하나요?”
아무래도 지도점검이나 감사 준비를 생각하면 출력해서 편철해 두는 것이 익숙한 까닭입니다. 물론 본인이 확인하기에도 모니터보다 종이문서가 익숙한 것도 한몫합니다. 그런데 전자결재를 도입하면서도 종이로 출력하고, 새로운 시스템에 입력하면서 기존 엑셀에도 다시 입력하고, AI로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기존 보고서도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면, 도대체 왜 하는 걸까요? 오히려 직원의 일만 늘어납니다.
이것은 혁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하나 더 얹는 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기존의 일을 하나 없앨 수 있어야 혁신입니다.
물론 법령이나 지침 때문에 반드시 종이 원본을 보관해야 하는 문서가 있다면 예외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시스템 안에서 결재가 끝났고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불안하다는 이유로 출력물을 다시 보관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왜 우리는 굳이 이것을 출력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일은 그만둘 수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3. 그래서 DX에는 ‘그만두는 결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직원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업무를 없애는 것은 직원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리더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이것을 우리 기관의 공식적인 업무방식으로 인정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DX의 성과를 이렇게 평가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을 새로 시작했는가?”보다 “무엇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게 했는가?”
전환 연구에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Innovation)과 함께, 기존의 기술이나 관행을 의도적으로 종료하는 엑스노베이션(Exnovation)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전자결재를 도입하는 것이 혁신이라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종이결재와 중복기록을 끝내는 것은 엑스노베이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DX의 리더에게는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뿐 아니라 무엇을 끝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할도 필요합니다.
Ⅱ. 판단하고 책임지는 리더
◆ “기술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있다.”
1. 지도와 실제 길은 다르다
지도에는 길이 반듯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공사 중일 수도 있고, 여러 이유로 통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와 현실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행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있습니다. 좋은 리더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틈)가 있다는 이유로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할까요? DX·AX 리더십은 그 틈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결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2. GPS는 오차가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GPS를 이용한 출퇴근 시스템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간단히 NFC를 태그만 하면 자동으로 출근·퇴근이 기록되고, 이를 바탕으로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이 계산됩니다. 담당자의 업무 강도가 줄어듭니다. 그런데 GPS에는 오차가 있습니다. 해서 반경 100m 이내에 접근하면 인식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 집에 정확히 도달하지 않아도 출근 버튼을 눌러 근태를 입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오차가 있으니 못 씁니다.”또는 “새 기술이니까 그냥 씁시다.”
하지만 둘 다 좋은 리더십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리더는 결정해야 합니다.
▪ 어느 정도 오차까지 허용할 것인가?
▪ 어떤 경우에는 별도의 확인 절차를 둘 것인가?
▪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조직의 규칙과 사람의 판단으로 메우는 것입니다.
이는 기술만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사람, 업무와 조직을 하나의 체계로 함께 보는 사회기술적 관점(Socio-technical Perspective)과 연결됩니다.
3. “그런데 지침하고 조금 다른데요. 누가 책임지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다 보면 기존 지침이 새로운 기술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집니까?”
당연히 위험을 검토해야 합니다. 법령이나 강행규정을 임의로 어겨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리더가 책임지고 결정하지 않으면 혁신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기술을 도입하라고 해놓고, “혹시 모르니까 기존 것도 다 하세요.”라고 하면 리더는 안전해집니다. 하지만 리더가 책임을 피하면, 직원이 중복업무로 그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런데 책임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자동화 연구에는 도덕적 충격흡수대(Moral Crumple Zon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동차의 충격흡수대가 사고 때 찌그러지면서 충격을 흡수하듯, 복잡한 자동화 시스템에서 실제 설계나 통제 권한은 다른 곳에 있는데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에게 책임이 집중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회복지현장에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시스템은 외부 업체가 만들고 기관이 도입했는데,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일선 사회복지사가 “왜 그렇게 판단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AX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내가 책임지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누가 판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은 어디에 둘 것인지를 미리 정해야합니다.
권한은 위에 있고 책임만 현장에 내려가는 구조에서는 좋은 AX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리더는 사전에 경계를 정해야 합니다.
▪ 이 정도 위험까지는 허용한다.
▪ 이 범위에서는 현장이 판단할 수 있다.
▪ 이 경우에는 별도의 확인 절차를 거친다.
▪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일선 담당자에게만 돌리지 않는다.
▪ 그리고 이 방식을 우리 기관의 공식적인 업무방식으로 인정한다.
4. “전자결재하면 기안이 늦어질 때는 어떻게 합니까?”
이 역시 시스템이 해결해줄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정해야할 문제입니다.
“긴급한 경우에는 이렇게 처리하고 사후에 이렇게 기록한다.”
시스템의 모든 예외상황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외를 처리할 조직의 원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서 리더의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기술이 우리 조직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드는 것까지가 리더의 일입니다.
안전과 조직 연구에서는 계획된 업무(Work-as-Imagined)와 실제로 수행되는 업무(Work-as-Done)를 구분합니다.
규정과 매뉴얼에는 일이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된다고 가정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긴급상황, 결재자의 부재, 이용자의 돌발상황처럼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DX는 종이 위의 업무를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5. 종이 기록은 정말 더 믿을 만한가?
근태관리대장에 직원의 외근 기록이 수기로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에 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기록이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고, 그전에 조직을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이 기록일 때는 묻지 않다가,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면 갑자기 묻습니다.
“GPS를 조작하면 어떻게 합니까?”
검증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었다고 인간에 대한 신뢰의 원칙까지 바뀔 필요는 없습니다.
▪ 무엇을 신뢰할 것인지
▪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
▪ 무엇을 반드시 통제할 것인지
리더가 해야 하는 것은 감시가 아니라, 경계를 정하는 것입니다.
6. FDE가 있다면, FDL도 필요하다
최근 AI 산업에서는 FDE(Forward Deployed Engineer)라는 역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현장으로 찾아가는 엔지니어입니다. 기술을 만들어놓고 사용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가 직접 현장에 배치되어 시설이 겪는 문제를 이해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적용하고, 다시 고칩니다. OpenAI도 FDE를 고객과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시제품부터 실제 운영 단계까지 기술 적용을 책임지는 역할로 설명합니다.
지금은 바이브 코딩을 하는 현장의 사회복지사가 이런 역할까지 맡아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AX의 미래는 FDE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FDE가 현장에 배치되는 것만으로 조직이 바뀔 수 있을까요? 한걸음 나아가 결정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저는 FDE의 연장선에서 사회복지시설의 리더는 FDL(Forward Deployed Leader)로서 역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FDL(Forward Deployed Leader)은 기술과 현장 사이의 불확실성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책임지며 조직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리더입니다.
FDE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기존 시스템을 끝내는 결정은 리더가 해야 합니다. 현장에 적용할 범위와 예외처리의 기준도 리더가 정해야 합니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과 판단하는 사람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조직의 변화가 가능합니다.
Ⅲ. 사람과 조직을 성장시키는 리더
◆ AI가 답을 대신하는 조직이 아니라, 더 잘 생각하는 조직
사람과 조직을 성장시키려면 리더 자신도 학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서 질문하고, 필요한 만큼 이해한 뒤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직원을 대할 때도 필요합니다.
1. “줘봐. 그냥 내가 할게.”
직원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AI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봅니다. 잘 안 됩니다. 오류도 납니다. 더디기만 하고, 뻔히 문제상황이 예측되는데도 담당자는 기어이 그걸 해보겠다고 합니다. 시설장이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줘봐. 그냥 내가 할게.”
그러면 당장의 문제는 빨리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직원은 배우지 못합니다.
아이에게 신발 끈 묶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답답하다고 부모가 계속 대신 묶어주면 아침 준비는 빨라집니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신발 끈을 묶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AX 리더에게는 기다리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실패를 허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정보나 이용자 안전과 관련된 영역은 엄격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전한 영역에서는 시행착오가 가능해야 합니다.
오늘의 작은 비효율을 견뎌야 내일의 조직역량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를 함께 견디는 능력입니다. 내가 모르는 상태를 견디는 것, 그리고 직원이 아직 잘하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는 것입니다.
2. 하지만 생각하는 것까지 대신해줘서는 안 된다
한편 반대 사례도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컴퓨터 강의실의 허브가 고장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컴퓨터 강좌가 있습니다. 담당자가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봤더니 새 허브는 화요일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관장에게 묻습니다.
“월요일 강좌를 휴강할까요?”
그런데 근처 전자상가에서 사올 수도 있지 않나요? 다른 부서의 장비를 임시로 빌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 정답이냐가 아닙니다. 중간에 한 가지 질문이 빠졌습니다.
“월요일 수업을 정상적으로 하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인터넷 쇼핑몰에 ‘화요일 배송’이라고 표시된 것은 화요일까지 물품을 구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찾지 못한다고 목적지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AI 시대에는 이 능력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AI가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했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도구가 제시하는 선택지의 끝이 인간의 선택지의 끝은 아닙니다.
그래서 좋은 리더는 직원의 문제를 모두 대신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버려두지도 않습니다. 실패할 기회는 주되, 생각할 책임까지 대신 져주지는 않습니다. AX가 필요한 이유는 AI가 조직 대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AI를 활용하여 조직 전체가 더 잘 생각하고 더 잘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3. 모든 사회복지사가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다
바이브코딩으로 사회복지사도 작은 시스템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회복지사가 코딩을 배워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는 FDE와 같은 기술 전문가가 현장에 배치되어 사회복지사와 함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일반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 우리가 해결하는 문제는 정확한가?
▪ 누구의 관점이 빠져 있는가?
▪ 이 기술이 현장에 들어오면 이용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 편리함과 효율성 뒤에 새로운 불편이나 위험은 없는가?
▪ 기술을 도입한 뒤 무엇으로 그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
기술을 만드는 방법을 모두 알지 못하더라도, 좋은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지 현장의 “문제(Vibe)”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회복지사가 기술의 단순한 사용자를 넘어 기술의 생산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4. AI Literacy에서 Production Literacy로
미국 미시간대학교 사회사업대학의 유나리 교수 등은 기존 AI Literacy를 넘어 Production Literacy가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기존 AI Literacy가 다른 사람이 만든 AI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이라면, Production Literacy는 기술의 목적·설계·선정·평가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역량으로 범위를 확장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질문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AI Literacy ---------------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Production Literacy ---- “어떤 기술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사회복지사가 개발자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복지사가 원래 가지고 있는 전문성이 중요합니다. 욕구사정, 문제정의, 개인-환경 관점, 집단 촉진, 프로그램 평가 등의 역량은 기술 개발의 제품탐색(Product Discovery), 문제정의(Problem Definition), 현장 맥락 탐구(Contextual Inquiry), 공동설계(Co-design), 제품평가(Product Evaluation)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기술을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가 빠져 있는지, 잘못된 기술이 이용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5. 키오스크를 못 쓰는 사람이 문제인가?
여기에서 사회복지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키오스크 앞에서 어르신 한 분이 메뉴를 찾느라 시간이 걸립니다.
→ 뒤에 줄이 길어집니다.
→ 사람들이 한숨을 쉽니다.
기술은 효율성을 높였지만 한 사람을 어느 순간 ‘느린 사람’, ‘기술을 못 쓰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어르신을 위한 키오스크 교육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아가 다음을 물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키오스크를 못 쓰는 사람이 문제인가, 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은 기술이 문제인가?”
좋은 기술은 매뉴얼이 없어도 어느 정도 사용법을 추론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사회복지현장에서 좋은 기술은 사용하기 쉬운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고, 실수해도 쉽게 돌아갈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해도 부끄럽지 않고, 자신이 살아오던 삶의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와 참여적 설계(Participatory Design)에서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설계 과정에 참여하고 권한을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봅니다. 앞서 유나리 교수 등은 이를 사회복지의 Person-in-Environment 관점 및 참여적 실천과 연결합니다.
사회복지사는 기술을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자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우리 이용자는 여기서 멈춥니다.”
▪ “글씨만 크게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불안해서 사용을 포기합니다.”
이것이 AI 시대 사회복지사의 또 다른 전문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더의 역할은 직원이 그런 목소리를 기술의 생산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낼 수 있도록 권한과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나오며
◆ AX의 출발점은 리더의 결정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AI로 무엇을 할까?”보다 먼저 “우리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그만둘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둘째, 판단하고 책임해야 합니다.
기술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허용하고 누가 판단하며 그 판단에 누가 책임질 것인지 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람과 조직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AI가 대신 생각하는 조직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면서도 더 잘 판단하고 더 잘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가능하게 하는 리더의 태도가 있습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과 “나는 모르니 네가 알아서 해”라는 회피 사이에서,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판단의 책임은 놓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AX의 첫 번째 전환은 시스템보다 리더 자신에게서 먼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기술의 문턱보다 먼저 생각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생각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은 리더가 모든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리더가 해야 할 일과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다릅니다.
FDE가 기술을 현장으로 가져온다면, 사회복지사는 사람의 삶과 현장의 문제를 기술 안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고 리더는 그 둘이 만날 수 있도록 방향을 정하고, 판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AI로 어떤 조직과 어떤 복지를 만들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AX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일이 아닙니다.
AX는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가 판단하며, 어떤 방식으로 일할 것인지를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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