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s와 pathos

 


이야기 인문학

저자
조승연 지음
출판사
김영사ON | 2013-10-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태초에 언어가 있었고, 언어가 인문학의 뿌리가 되었다!단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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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감영사)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해,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는 '로고스 logos'와 '페이소스 pathos'가 있다~~"

 

이때 logos는 말을 조리있게 해서 똑똑하다는 인식을 통해 나를 따르게 하는 방식이며,

pathos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게 함으로써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사회복지에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

우리가 천착해온 logos 즉 전문지식과 기술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비전문적이라 간과하고 무시했을 지 모르는 pathos가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든다.

클라이언트를 내 편으로 만들어서 클라이언트와 함께 사회복지를 일궈 나가는 것.

어쩌면 이미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채 인식 못했던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의 저자 토마스 조이너(Thomas Joiner, 심리학자·교수)는,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저자
토머스 조이너 지음
출판사
황소자리 | 2012-10-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아버지를 잃은 개인의 기록, 혹은 자살에 관한 과학적 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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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사람은 세가지 심리 조건이 합쳐져야만 자살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마음,

둘째는 타인에게 짐이 된다는 부담감,

셋째는 두려움이 없는 마음, 즉 고통에 대한 내성이다.

 

 

이 세 가지 심리 조건 중 단 하나라도 부족하면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 EBS <다큐 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제2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편

방문객 : 사회복지시설을 찾는 이들을 맞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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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는 순간, "아!"하는 감탄사를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詩였다.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2011년 여름편에 걸려 유명해졌다 하는데, 정작 나는 며칠전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처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문구는 더 가슴을 때린다.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詩 인용] 정현종 시집,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사실 전문의 구절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이 없다.
어쩜 사회복지시설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이리도 절절히 담아낼 수 있었을까?
그들의 마음이 곧 이 시구(詩句)와 다름아닐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 혹은 바쁜 업무에 찌들어,
내 눈빛이, 표정이, 목소리가 무덤덤하게 혹은 냉담하게 그들을 향해 있진 않았을까?
그들은 그 부서지기 쉬운 혹은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안고 찾아왔을터인데,
다시한번 나로인해 부서지고 아픔을 겪게 한 적은 없었을까?

 

그들을 향한 나의 응대가 환대가 되기를,
시인의 노래처럼, 바람처럼 더듬어 보듬을 수 있기를..

 

며칠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불편한 진실? "여왕의 교실" 언어폭력인가, 진정한 교육인가?

MBC 여왕의 교실, 마여진(고현정 분)의 독설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차별이 어떠냐.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는건 너무나 당연한 사회 규칙 아니냐.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런 특권을 누리고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사람은 1%다. 나머지는 차별이고 부당하다고 떠들며 사는거다. 대부분의 너희 부모들처럼. 쓸데 없다. 경쟁이 잘못됐다고 소리쳐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는 상대를 제압하기 보다 최선을 다해 도망가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할 땐 상대의 비겁함을 공격해야 하는데 약자에게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인터넷에서도 이 불편한 독설에 대해 여러 기사들을 쏟아내고, 네티즌들들은 "언어폭력이다.", "이 정도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하는 교사가 얼마나 있냐?" 등의 댓글들을 달고 있다.

 

마여진의 이러한 독설이 불편한 이유는 분명 그것이 언어폭력이고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 딱히 반박할 수 없다는 현실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갑론을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다행히도 우리 사회는 아직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한다는 생각 또한 보편적인 듯하다.


나라면 과연 이 불편한 사실 앞에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우선 드라마가 갖는 불편한 요소들과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은 구분되어야 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평등하게 차별받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드라마와 같은 문제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 사회 전반이 드라마와 같다면 과연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가?
때문에 선량한 여러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또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생각하고 또 성장해 간다. 이것이 현실이다.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 중에서 하나의 불편한 단면을 잘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단면들의 짜집기 그 이상은 아니다. 때문에 드라마처럼 이러한 불합리한 단면으로 전체를 싸잡아 말해버린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때문에 마여진의 이러한 교육방침이 오히려 아이들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설령 드라마가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에 다름 아니다.

 

단순한 진실을 놓치지 말자. 아이들은 그들이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보호되어야 하며, 바람직한 교육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 하나의 예로 그 설명을 대신해 보고자한다.
법은 얼마나 우수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가라는 능력, 즉 돈과 권력에 따라 평등하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 있는가?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누구는 몇년씩 수감되어야 하는데, 사회 유력인사들은 구속이 아닌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거나 구속되어도 금방 여러가지 이유로 출소하는 것을 종종보지 않았던가?
법은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피치못할 오류들이다.

 

하지만 법이 만인에게 평등해야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 자체로 완성형이 아니며,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생각을 모으고 모아서 이러한 지향적 가치들을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다듬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사회권을 얻었고, 자유권을 얻었다. 비록 지금 그렇지 못하다고 손 놓아버린다면 결코 우리는 이런 가치를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我田引水로 인한 自家撞着을 경계하며..

언젠가 치매 노인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고~
나이 들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부끄러운 행동을 하게 되면 어떡하노?"


"평소에 열심히 살아오신 분도 피할 수 없는 일일진데,

그래서 더 선한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야지~~"

 

"맑은 정신으로 여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참 고맙고 복 받은 일인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서 남의 이야기에 귀막고 있지는 않았을까?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억지를 쓰고 있지는 않은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