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중에서 學·習·悅

팟캐스트 인문라디오에서 "뽑아 읽는 논어 강독"편에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논어論語는 공자가 쓴 책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매일매일 공자의 말씀을 듣고 선생님의 삶의 모습을 기록했던 것이 공자의 사후 하나로 엮은 것이 논어라는 책입니다.

 

하면, 왜 공자의 제자들은 이 논어라는 책을 엮었을까요?

사실 그들은 논어라는 책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공자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자, 각자 다양한 제자들의 기록을 공유하기 위해 모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논어는 항시 자왈子曰로 시작합니다. 이는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이란 뜻으로 공자왈孔子曰이라 하지 않은 것은, 결국 제3자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기 위해 정리한 것이라는 하나의 단서가 됩니다.

 

그렇다면 다시한번 이 제자들은 왜 공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록했을까요?

논어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출발해야합니다.

 

우리가 기록하는 이유는 ‘잊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한편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그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하게 됩니다. 즉 공자의 말씀이 제자들에게 “아! 그렇구나”라는 뭔가 마음의 울림을 주었고,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겼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공자의 감동적인 말씀에 대한 기록을 묶어 하나의 책으로 편찬하면서, 제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논어의 시작은 공자의 말씀 중 가장 중요하고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 묶어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子曰, 而時之 不亦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가장 대표성을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공자의 말씀, 논어는 學이라는 글자로 시작합니다.

 

통상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해석되는 이 문구는 앞서 언급한 이유에 따라 매우 상징적이면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정말 기쁜가?’, ‘뭐가 기쁜가?’, ‘왜 기쁜가?’이 압축된 문장표현이 갖는 본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 표면상의 단순한 뜻은 아닐 것입니다.

 

먼저 學배울 학이라는 글자는 效본받을 효와 같은 뜻으로 풀이합니다.

즉 배운다는 의미는 본받는다로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본받는 행위를 하게 될까요? 자신의 부족이나 결핍을 자각했을 때, 즉 지금 이 상태로는 안되고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본받게 합니다.

 

변화하고 성장하려면, 지금껏 내가 알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내가 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갖고 있지 못한 뭔가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합니다. 이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 배움입니다.

 

정리하자면,배움이란 ‘변화와 성장을 위한 새로움과의 만남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부족과 결핍을 자각하고 변화와 성장이 필요함을 느낄 때 우리는 배우려고 또는 본받으려고 하며, 이를 위한 새로움과의 만남은 변화 성장을 위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만남이 곧 변화와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 만남은 낯선 새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낯선 것을 이질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 즉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習익힐 습입니다.

 

習은 羽깃털 우와 白흰 백으로 구성된 한자로 둥지(白) 안의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날개짓(羽)을 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둥지 안의 어린 새는 밖을 날아다니는 어미 새를 봅니다. 이를 통해 날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상태를 자각합니다. 이에 충분히 날 수 있을만큼의 날개짓을 익히고는 마침내 둥지 밖으로 몸을 던지는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와 성장은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날기에 익숙해진 새는 숲이 답답해질 때 쯤, 이 숲을 벗어나 더 멀리 가보지 못한 세상을 꿈꾸고 또 나아가게 됩니다.

 

공자는 이러한 배움과 익힘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기쁠 열(悅)라고 말합니다.

그냥 기쁜 정도가 아니라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희열을 말하는데요, 정말 배우고 익히는 일이 그렇게 기쁜 일인가요?

 

같은 책상 앞이지만 공부하라면 30분도 못 앉아있는 아이가 게임을 하라면 몇 시간이고 앉아 몰입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단순히 게임은 재미있고, 공부는 재미없으니까? 공자의 말씀으로 되짚어보면, 아이는 게임 속에서 레벨level에 대한 부족과 결핍을 자각하고 있고, 빨리 다음 스테이지stage에 대한 열망으로 보다 더 나은 상태로의 변화와 성장을 희구하니까 그 게임을 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리고 밥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은 채 몰입하지요.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상태를 이루었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한편 그 게임을 마스터하고 나면 아이는 더 이상 부족과 결핍이 없으니까 더 이상 그 게임을 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새로운 게임으로 넘어가 또 다른 변화와 성장을 꿈꾸겠지요.

 

여기서 단순히 학교 공부를 접목시켜 그것이 재미있다고 억지를 부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배움과 익힘에 있어 그 대상은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부족과 결핍을 자각하고 변화와 성장이 필요함을 느껴, 배우거나 본받으려하는 새로움과의 만남인 學(학)배움

이 새롭고 낯선 것을 이질적이지 않도록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習(습)익힘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비교할 수 없는 큰 悅(열)기쁨이라는 것

즉, 배움과 익힘이 희열을 준다는 사실!

그것이 수천년을 넘어 공자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논어의 학이편-학습열.hwp



팟캐스트 인문라디오에서 "뽑아 읽는 논어 강독"편에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사람은 말에 의해 고무되고 분발하게 된다

 

 

 

 

 

 

 

 

 

사람은 말에 의해 고무되고 분발하게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

 

 

 

 

 

 

 

 

 

구슬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

 

 

 

 

 

 

 

 

 

 

구슬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
평온할
따뜻할
어질

 

 

 

 

 

 

 

 

 

 

 

 

 

 

2015.01.05 10:19

2014년 부산 사회복지사대회 「락(樂)」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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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커뮤니케이션의 상관관계

삼성경제연구소(seri.org)의 2010년 "워크스마트 실천방안 연구(조현국)"에 따르면,
물리적 거리와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확률간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5m 이내에 있는 경우 20~25%, 하지만 20m를 벗어나게 되면, 10~15%로 뚝 떨어진다.

또다른 자료인 2006년 Allen과 Henn의 연구에 따르면
동일 공간, 같은 부서, 같은 프로젝트의 경우 95%의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는 반면
동일공간이라 하더라도 다른부서 다른 프로젝트는 16%로 현격히 떨이지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층 또는 다른 공간인 경우는 다시 5%의 커뮤니케이션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공간과 부서, 프로젝트라는 3가지 요소를 가지고 살펴보면
동일공간에 있을 경우 부서와 프로젝트 중 어느 하나만 공통점을 갖고 있어도 60%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반면
다른 층에 있다면 부서, 프로젝트와 관계 없이 현저히 커뮤니케이션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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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얘기해서 멀면 소통도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복지시설에서 근무할 때, 다른 부서,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보게 되면 의사소통이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직원과 하루종일 대화한번 없이 퇴근한 경험은 없으신지요?

 

연구 결과는 연구결과고~

일부러라도 소통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연구에서는 고작 5%라고 했으니 우리는 10% 해봅시다.

 

하루에 두번!

혹시 만나서 얘기하지 못한 직원은 없나 챙겨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