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노인 인권의 문제와 나아갈 길에 대한 방향 찾기

이 원고는 2018년 11월 23일 동부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권 강의에서 자료집에 실은 글입니다.

 

《능엄경(楞嚴經)》을 보면 "見指忘月(견지망월)"이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보라고 하면, 
손가락을 통해서 달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손가락을 보면서 그것을 달이라고 여긴다면, 
달을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손가락마저 놓치게 된다. 
왜냐하면 손가락을 달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손가락만 놓친 것이 아니라 밝음과 어두움도 놓치게 된다. 
왜냐하면 손가락을 달이라고 여겨 밝고 어두운 달의 성질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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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지난 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망직종으로 그 자리를 놓치지 않는 사회복지사, 그들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은 언제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또 그들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들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사회복지시설로 자리매김하면서 노인 학대를 비롯한 노인인권 지킴이 역할을 해온지 1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환경들은 부단히 변해왔으며, 인권, 특히 노인인권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노인혐오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청년층의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노인복지시설에서의 노인학대 또는 노인인권 침해에 대한 기사들이 언론을 통해 노출될 때면, 아직도 저런 시설이 있나 하는 안타까움과 사회의 커다란 집단의식의 흐름 속에서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노인복지시설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과 종사자분을 만나 얘기를 들어볼 때면, 제대로 된 방향찾기를 위한 우리의 담론이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놓치고 가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본 세미나를 통해 그러한 얘기를 나누고, 올바른 기치를 세우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2. 21세기 우리 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노인의 삶

과거 유교 문화권에서 효를 중시하는 문화를 비롯해, 농경사회에서 노인의 경험과 지혜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절대적 빈곤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난이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노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원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노인의 지위는 그다지 존경의 대상이 아닌 듯합니다. 노동력은 약해졌으며, 경험과 지혜는 인터넷이 대체하고 있고, 급변하는 생활환경에 오히려 적응하지 못한 채 뒤처지는 존재로 부정적 이미지가 더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뒤쳐진 경험만을 고집하는 모습은 고리타분한 존재로 부각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 억울한 상황일 것 같습니다. 과거와 달리 우리 바로 앞에서 현대의 문을 연 어머니·아버지 세대의 인생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고 넓습니다. 전쟁을 경험했고, 농사를 지었으며, 생산현장에서 뛰었고,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TV와 휴대통신을 넘어 PC와 인터넷이 보편화 되었고, 지금은 VR, AR 그리고 AI가 보급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수백년을 압축해놓은 듯한 변화 속에서, 그 시작을 연 당사자임에도 그 열린 문을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변화에 채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비난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변화 중 일부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공감은커녕 이해조차 어려운 것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극심한 경험의 차이는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와 비교해 다른 판단 기준을 갖게 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텝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 가능했던 기회의 시대이자 절대적 빈곤으로 고통받던 것도 사실인 시대에서 살아남은 노인은 기회의 절벽 속에서 상대적 박탈을 경험하는 청년층이 쉽게 이해되기 어려울 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중요한 것 중의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노인은 청년들을 이해하고 있으며,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장 본인의 부모님을 바라보세요. 자신이 요즘 젊은이들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있으며, 오랜 시간의 인생이 준 경험으로 혹시나 자신의 생각이 편협하거나 왜곡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거시적 관점에선 그다지 많진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소소한 습관처럼 서로서로 수용해야할 것들 뿐이지요. 어찌보면 역으로 청년들이 스스로 경험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과거의 역사를 가벼이 흘려넘기면서 노인에 대한 이해를 하려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인터넷에 보면 노인을 혐오하는 이유에 대해 60여 가지가 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사례들은 도시전설처럼 쉽게 확대되고 퍼져나가지만, 그 사실이 과연 노인을 혐오할만한 이유로 타당한 것인지 그리고 일방적인 노인의 고집인지는 더 살펴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무턱대고 싫다고 차별했을 뿐 왜 그런 생각과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돌이켜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볼 때면 청년과 노인의 서로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노인복지시설과 노인 인권 문제

한편 노인들 중 혼자 힘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이들은 사회복지시설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빈곤노인, 신체적·정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노인 뿐만 아니라 여가를 보다 풍요롭게 보내고자 하는 노인 등은 「노인복지법」 제31조에 따른 노인복지시설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절대적 빈곤이 만연하던 시절, 뭐라도 주기만 하면 고맙다고 하던 과거와 달리, 서비스의 충분성, 서비스 제공과정에서의 윤리성 등을 강조하는 시대로 변화한 오늘날 우리는 예상치 못한 인권 침해 현장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사실 예상치 못했다기 보다 미처 그런 것까지 챙기고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인권 옹호자에 가까워야할 사회복지시설 종사자가 인권 가해자로 몰려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생활시설에서 제기될 수 있는 노인인권 침해 혹은 노인학대의 사례로 다음과 같은 것들은 이미 많이 언급된 바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체위변경을 제때 하지 않아 욕창이 발병하는 경우, 대소변처리에 있어 제때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거나, 이때 언어적 정서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그 외에도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경제적 학대(착취), 방임, 자기방임, 유기 등은 노인학대의 유형으로 명시되어 꼭 지켜야할 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보접근권, 서비스 선택권, 계약의 자기결정권 등과 충분한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 알 권리(정보제공), 참여할 권리(목표설정 과정 등 자기결정), 사생활 및 비밀보장, 그리고 인격적 존중을 받을 권리, 학대나 부적절한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 등의 보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왜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도 깊은 논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또한 노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에 깔리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노인은 수치심이 약한 존재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기 때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성장하면서 점점 지켜야할 사회적 약속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매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보다 더 오랜 삶을 살아온 노인은 당연히 더 많은 부끄러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은 수치심이 약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하는 부탁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껴 자신의 욕구를 감추고 삭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한다면 한발 앞서 한명의 고귀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노인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노인은 이미 청년의 삶을 거쳐온 존재입니다. 지금 하기 어렵더라도 과거에 그것을 할 수 있었으며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도움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을 헤아려야할 것입니다.
셋째, 노인을 자기결정할 수 없는 존재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전 생애를 거쳐 스스로 결정해왔으며, 지금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스스로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당사자에게 묻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자기결정과 참여를 원치 않는다면, 그건 묻는 방법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노인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관찰과 경청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의 범위를 좁히고, 그 속에서 해결가능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상대방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노인 인권문제가 중요한 이유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노인의 삶을 다 이해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 경험하는 문제는 분명 지금과는 또 다른 형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슈, 사건, 내용 등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곧 우리의 문제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노인 인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문제에 공감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데 동참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노인은 평생 그들의 삶이 수많은 변화 속에서 적응해왔던 것처럼, 노인의 인권에 있어서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제1세대가 될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아이를 대할 때 그들에게 존중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노인 또한 존중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냥 하는 말로써가 아닌 우리의 가까운 미래를 위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는 투자를 할 때가 아닐까합니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혐오 등으로 불리며 이분화하는 프레임은 일견 문제를 명확히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혐오도 그 중 하나입니다. 노인으로 화살을 돌리게 되면 머지 않은 시간 내에 그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노인은 온건하며, 수용적입니다. 또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합니다. 오히려 이런 노인의 좋은 점을 강조하고 그들의 삶에서부터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변화에 대응전략으로 삼는 것이 우리 사회 혐오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이분화 프레임을 극복하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로서 노인복지시설을 이용하는 노인에 대해 감수성을 갖는 것은 사회복지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직접 참여를 권장하는 형태의 권리보장은 노인을 수동적인 수혜자에서 적극적인 이용자로 변모시킬 것입니다. 또한 여타의 노인문제를 다루는 단체들과 비교하여 가장 큰 차별점이 되어 노인복지시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5. 노인 인권 존중의 방향성

노인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법들은 이미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첫째, 교육을 통한 인식 제고입니다. 홍보와 사회교육을 지속적으로 해 나감으로써 노인 학대와 인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필요한 서비스 제공입니다. 노인 학대 및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의 제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상담 및 치료, 보건·의료서비스 등의 타 전문직과의 연계도 필요할 것입니다.
셋째, 제도적 절차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노인복지법에는 이미 노인 학대 금지, 신고의무 및 보호조치 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다 실효성이 높은 실천방안이 될 수 있도록 보완·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꼭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당사자의 참여를 통한 결정입니다. 노인의 인권 문제는 노인만이 경험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안도 노인이 가장 잘 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감하는 노인 인권 문제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노인이 스스로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여러분은 노인 인권을 지키는 최일선에 있는 지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존경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인의 인권을 지켜나가기 위해 더 노력하라는 말이 일견 부담으로 들릴 수도 있으며, 때로는 역으로 인권을 침해 당하는 힘든 현실을 경험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노인이 스스로의 인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십시오. 또한 세대 갈등을 넘어 노인을 자신의 미래로 투영하는 사회적 투자로 존중하는 노력에 다른 누구보다 민감한 우리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여러분들이 앞장 서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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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

민주주의하면 대표적으로 떠 오르는 것이 국민 주권, 그러다 보니 민의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이 되고, 그 결과 다수결이라는 공리주의적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절차적 다수결과 인권이 상충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실 이런 경우가 많다. 소수자 인권이 그러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권들이 그렇다. No Kids Zone에 대한 찬반 논리 또한 맥락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인권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일까?
조효제 교수님의 「인권의 문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계에 대해 8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교수님은 다수결과 사회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p.280-281 "자유 권리와 민주 권리를 합친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자 필요조건이 된다. 즉, 비덤의 해석에 따르면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중략) 개인의 자유 권리에 해당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다수결의 심의대상이 되지 못한다. (중략)  소수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다수결이라는 것은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고, 반대로 자유 권리와 민주 권리가 완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내려진 다수결은 당연히 민주적 정당성의 무게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p.289 "우리가 여기서 경제적.사회적 '자선'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말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의무주체로서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이 인권의 기본원칙이다(Henkin 1990, 45-48)."
이는 세계인권선언 제29조에서도 밝히고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p.292 "민주주의가 경제적 인권의 충분조건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필요조건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략) 결론적으로,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며, 경제적·사회적 권리는 민주주의와 상호의존관계를 이룬다".

이를 해석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인권은 가치개념으로 자유권은 이미 사회적 합의의 범주를 벗어나 있음은 자명하다. 한편 사회권 또한 국가적·법적 한계를 초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권이 자선이 아니라 권리임은 그에 따르는 의무에 대한 동의를 전제하는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가 사회권의 필요조건임을 말한다. 
즉 자유권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며, 사회권은 민주주의와 상호의존관계를 이루며, 인권은 민주적 거버넌스를 요구한다 할 것이다.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한 베네수엘라 헌법

[출처]
https://es.wikisource.org/wiki/Constitución_de_la_República_Bolivariana_de_Venezuela_(1999)

 

Constitución de la República Bolivariana de Venezuela (1999)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헌법, 1999)

 

Artículo 88. El Estado garantizará la igualdad y equidad de hombres y mujeres en el ejercicio del derecho al trabajo. El Estado reconocerá el trabajo del hogar como actividad económica que crea valor agregado y produce riqueza y bienestar social. Las amas de casa tienen derecho a la seguridad social de conformidad con la ley.

 

88조 국가는 일할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남녀의 평등과 형평성을 보장한다. 주정부는 가사 노동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부와 사회 복지를 창출하는 경제 활동으로 인식할 것이다. 주부는 법에 따라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상황과는 별개로, 헌법에서 가사노동을 인정하고 주부의 사회보장권을 인정하고 있는 사례이다. 물론 가사노동의 인정이 성역할의 고착화 문제 등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서는 정보의 확인 차원에서 기록으로 남긴다.

2019.09.30 15:39

사회복지사 대상 인권 강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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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일

지난 8월 무릎 연골 파열로 봉합수술을 하고 나니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달라졌다.”

생전 처음 목발이란 것을 짚어보게 되면서 그 낯선 느낌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낮은 턱 하나가 내 이동을 방해했고, 위험하게 만들었다. 잘못된 목발 짚는 방법은 겨드랑이를 아프게 했고, 이후엔 다시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비록 퇴원은 했지만, 소파를 중심으로 반경 몇 미터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바지를 벗는 일, 머리를 감는 일 등의 일상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은 상당히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기어이 혼자 머리를 감아보겠다고 낮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에 의지한 채 옷을 다 벗고 해야하는 샤워 아닌 머리감기와 이후 다시 입어야 하는 속옷에 대해 아내는 그냥 나와서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벌거벗은 채 목발을 짚고 거실을 가로질러야 하는 행위는 ‘수치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장애인복지를 수년간 해왔으며, 사회복지현장에서 그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만심' 또한 무너져내렸다. 내가 얼마나 겉으로만 그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있었던가에 대한 절절한 반성도 뒤따랐다. 그랬다. 그들에게 있어 인권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옷을 입는 당연한 일련의 과정 속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타인의 배려 또한 무너지는 자존심과 수치심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하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겨우 목발에 익숙해질 무렵, 아침부터 쏟아지는 늦여름의 빗줄기는 또 하나의 숙제가 되었다. 병원을 가기 위해 나선 나는 목발을 짚은 두 손 때문에 우산을 받쳐 쓸 수 없었고, 결국 비를 맞으며 걷을 수밖에 없었으며, 불쑥불쑥 나타나는 미끄러운 바닥에 몇 번이고 휘청거려야만 했다. 겨우 2층에 있는 병원진료실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엘리베이터는 왜 그리도 더디기만 하던지. 그리고 진료를 마친 후 나오려 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굽히거나 디딜 수 없는 왼쪽 다리 덕에 닫을 수 없는 화장실 문은 한없이 야속하기만 했다. 혹여 누구라도 들어올까 부들부들 문고리를 붙잡고 늘어져야만 했던 상황이 서글프기 그지 없었다.

사회복지 실천에서는 당사자의 참여,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강조한다. 인권 또한 그러하다. 사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일들이 아주 많다.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사회복지사 등이 이를 대변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끊임없이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 그 발견을 위해 직접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 거기에서 출발해야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