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폭력을 행사하는 장애인 K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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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지체 장애인이다. 목발을 짚고 다니며, 부인과 함께 인근에서 트럭으로 야채 장사를 하고 있다.

오늘도 그날인가보다. K씨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마셨는지 소주냄새가 풍기지만 그다지 많이 마신 것 같아보이지는 않은데, 목소리는 흥분해서 알아듣기도 힘든 소리로 고함과 욕설을 섞어 말하고 있다.

실상 이런 일이 달거리로 일어나다보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용자 상담의 측면에서 자리를 앉히고 찾아온 이유를 차근히 들어보니 핵심은 동네 노인들에게는 생필품, 파스 같은거 나눠주면서, 나는 왜 안주느냐이다.

물론 아주 순화한 표현이며, 직접들은 얘기를 글로 옮기면,
"삐~~가 삐삐~~하는데, 왜 삐삐삐가 삐~~하느냐고!"

기실 K씨는 등록 장애인에 수급이라 웬만하면 서비스의 대상이 되어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솔직히 행실이 나빠 주위와 싸움이 잦고 평판도 좋지 못하다.

게다가 지체장애인이라고하지만 목발은 형식적이라 두 발로 잘 걸어다닌다. 한번은 흥분해서 2층이나되는 거리를 목발을 두손에 들고 거의 날아오듯이 뛰어올라오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손에 든 목발은 그대로 흉기가 되어 복지관 사무실을 휩쓸었다. 컴퓨터 모니터가 넘어지고, 커피포트가 깨어졌으며, 책상의 스크린이 떨어졌다.

복지관을 찾아올 때면 의례 술을 약간 마시고 찾아오는데, 이 또한 일종의 다음에 또 봐야하는 상황에 대해 취해서 그랬다고 얘기할 구실을 만드는 하나의 포석에 다름아니다. 이쯤 되니 거의 남우주연상 감에 이르는 발군의 폭력 연기를 보여준다. 거기에 따라온 부인은 말리는척 은근히 부추긴다. 여우조연상감이다. 게다가 은근히 자신의 폭력에 복지사가 맞대응하면, 그것을 빌미로 복지관을 힘들게 할 구실을 만들려고도 한다. 이럴 땐 일부러 누가 자신을 때려주길 바라고 또 유도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한편 수급이라하지만, 트럭으로 야채를 팔고 있어 많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일정수준의 소득도 있는 편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꼭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면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주기적으로 찾아와 폭력과 욕설을 하니, 미운 클라이언트가 따로 없다. 이처럼 싫은 클라이언트가 주는 심한 이질감과 거부감은 사회복지사도 인간이기에 당연히 느끼게 되는 하나의 감정이다. 어쩌면 제일 대응하기 싫고, 또 만나기 싫은 형태의 클라이언트가 아닌가 한다.

이런 클라이언트도 역시 이용자로 대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인가?
내 대답은 그 사람은 "클라이언트가 아니다"이다. 따라서 어떤 서비스도 제공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성스런 사회복지 서비스 공간으로부터 쫓아내어야할 이(異)존재이다.

첫째,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아무리 클라이언트로서의 존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폭력이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순간 사회복지사-클라이언트 관계는 무너지며, 그 즉시 그는 단순 범법자에 다름 아니다.

둘째, 사회복지시설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다. 사회복지시설에 있어 없는 서비스를 만들어내어서 제공할 의무는 없다. 사회복지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부합하여 서비스가 생산되어진다. 하지만 여건이 따르지 않는다면 서비스를 생산이 불가능하고, 그럴 때에는 타기관 의뢰 외의 다른 수단이 없는바, 책임지고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만일 제공가능한 상황이라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다. 단순히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밉고 싫다고 한다손 치더라도 개인적인 감정을 사회복지서비스에 개입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를 포함해 일반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기 때문에 그렇게 찾아와서 억지를 부린다고 즉시 서비스가 제공되기는 힘들다.

셋째, 서비스 수혜의 타당성을 입증한 후 서비스제공이 이루어져야한다. 클라이언트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해결을 의뢰하는 사람으로, 본인이 그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타당성에 대한 입증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사가 그 일을 대신해 주고 있긴하지만, 클라이언트도 스스로 서비스의 필요성을 요구해야하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복지사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사회복지사는 이미 그 사람이 서비스 수혜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클라이언트의 수혜자격에 대한 입증 없이, 성가시게 구니까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서비스를 제공하였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회가 우리에게 위임한 공정한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제언에 대해 현재 정형화된 규정은 없다. 이로 인해 많은 논란이 있고, 사회복지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 자격이 주어지듯이, 클라이언트가 실질적인 복지서비스의 이용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의 자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자기자신의 입장과 자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을 때 권리로서의 사회복지서비스는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첫째,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클라이언트 폭력에 대해 사회복지사의 신변보호를 위한 구체적 규정이 필요하다.

둘째, 서비스 수혜자 선정에 대한 보다 객관적 기준 제시 및 그렇지 못한 상황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자율권 부여가 필요하다.

셋째, 발생한 부정적 결과(노인 이용자의 사망, 장애인 이용자의 부상 등)에 대해 서비스 제공이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일정 수준에서의 면책권의 보장 등이 필요하다.

이는 어려운 클라이언트를 회피하기 위함이나, 잘못된 서비스 제공에 따른 문제상황에 대한 면죄부의 부여와는 다르다.

선한사마리안법이 응급구호 행위에 대한 면책권을 부여하듯이, 자율권과 면책권 그리고 보호규정의 마련으로 마음 놓고 사회복지 서비스를 펼칠 수 있었으면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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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실천의 일곱가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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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Biestek이 얘기한 사회복지실천의 7대 원칙을 기억하는가?
엄밀히 얘기하면 Case Work 그것도 관계론에 있어 클라이언트가 갖는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공통적이고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원칙 일곱가지를 제시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7가지 원칙은 4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① 개별화(individualization) : 개인으로 처우받고 싶은 욕구
② 의도적인 감정표현(purposeful expression of feeling) :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
③ 통제된 정서적 관여(controlled emotional involvement) : 문제에 대한 공감을 얻고 싶은 욕구
④ 수용(acceptance) : 가치있는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⑤ 비심판적 태도(nonjudgmental attitude)
⑥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client self-determination)
⑦ 비밀보장(confidentiality)


그런데, 이 오래된 원칙은 과연 여과없이 받아들여도 좋은 것일까? 나의 대답은 “글쎄?”이다. 분명 이 원칙들이 원론적이고, 기본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데에는 공감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설프게 아는 이 7가지 원칙이 사회복지사를 클라이언트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게 하는지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특히 초보 사회복지사에게 있어 이 원칙은 잘못 이해하면 스스로의 전문성을 의심하고,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그에 대한 경고를 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첫째,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개별화가 아니라 범주화이다.
사회복지는 실천학문이다. 아무리 이론으로 많은 사례를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또 그와 다르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다양성의 변화 속에서 클라이언트를 제대로 볼 수 없게된다. 개별화가 주는 함정이다.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마다 일일이 개별화 한다는 핑계로 어떠한 기준도 없이 클라이언트를 사정한다면 결국에 얻게 되는 것은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력감이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원칙에 준거하여 클라이언트를 구분하고, 범주화해나가는 작업이다. 이처럼 클라이언트를 범주화해야 이를 통해 정확한 사정과 개입계획이 수립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사회복지사를 전문가로 만든다. 단, 겸허함은 기본이다.
초보 사회복지사라면 기 구축된 선입견이 없는 바 오히려 클라이언트를 충분히 개별화할 수 있는 환경에 서 있다. 그런 경험속에서 클라이언트를 범주화해 나가고, 그런 범주화의 카테고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실력있는 사회복지사가 될 것이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도착하게 최고의 단계가 개별화이다.

둘째, 클라이언트의 감정표현은 절제되어야만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표출된 지나친 감정의 누수는 사회복지실천에 있어 관계형성을 오히려 방해한다. 사회복지의 개입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문제의 해결도 클라이언트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단계별로 진행되는 것이 옳다.
물론 감정의 표출로 인한 카타르시스는 정서적 환기를 통해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해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이기 쉽다.
일반적으로 클라이언트는 자신의 감정 조절에 서투르다. 또한 감정의 표출이 주는 정서적 충격에도 그만큼 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때로 클라이언트의 감정을 표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절제시키고 다가올 반응을 예측하면서 수위조절에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셋째, 클라이언트의 감정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이입하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확언’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언제나 한가지, “네, 도와드리겠습니다.”이다. 그 외의 어떤 미사여구도 그들의 귀에는 닿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확인해보겠습니다.”가 대부분이다. 흔쾌히 “네”라고 대답하기에는 더 많은 제약들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입해야한다. 기왕 관여할거면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 클라이언트와의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된다. 마치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야릇한 미소로 클라이언트를 바라보거나, 냉정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현실을 분석하는 것은 안그래도 어려운 발걸음을 뗀 클라이언트를 더욱 주눅들게 만들기 쉽다. 최대한 따뜻하고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할 때 클라이언트도 자신의 마음을 열 수 있다.
도움을 원하는 이가 있고, 내 소명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는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는 핑계거리를 찾지 마라. 시작은 늘 일단 된다고 믿고, 거기서 출발해야한다. 믿는 곳에 길이 있다.
사회복지사가 서 있어야 할 곳은 클라이언트와 마주보는 자리가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편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곳이다.

넷째, 수용은 최소한의 원칙일 뿐이다.
클라이언트가 어떻게 느끼는지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한쪽발을 뒤로 슬쩍 뺀 상태에서 “나는 이해가 안돼, 그러니 수용만 할래”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하라. 그건 수용이 아니라 방관이다. 비록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한다. 그렇게 해서 수용의 그릇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현재의 수용에만 국한시키면, 결국 듣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이 많고 변명만 늘어나게 된다. 그것을 뛰어넘기위한 수용의 기본자세가 적극적 경청이다. 단 한명의 클라이언트를 만나더라도 그들과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감정이입하면서 수용을 뛰어넘어보라. 나는 어떤 크기의 그릇을 가슴에 품고 있는가?

다섯째, 클라이언트의 잘못을 직면케 하라.
그들은 잘못이 잘못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같은 잘못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클라이언트 본인만의 문제 때문은 아니다. 오랜 시간 환경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켜왔고, 그 속에 있으면서 뭐가 문제인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한채 이유없은 문제의 악순환만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처해야할 문제에 대해 클라이언트 자신을 비난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야기하는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하면서 단호히 짚어낼 수 있어야만한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직면이라는 아주 위험한 실천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 직면의 한켠에는 클라이언트의 비난이 뒤따를 수도 있다. 이는 직면의 기술을 썼을 때 클라이언트가 분명 당신이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주어지는 책임이다. 그 책임을 어깨에 질 수 있을 만큼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당신에게 요구된다.

여섯째, 클라이언트는 누군가 확인해주기를 바란다.
혼자서 내리는 결정은 언제나 불안하기 그지 않다. 그런데 사회복지사는 계속 스스로 결정하라고 강요한다. 이런 행위는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에 다름아니다.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은 자기 관념이 투철한 보편적 시민에게 유용한 방법이다. 이미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더이상 떨어질 나락조차 없어 한줄기 구원의 손길을 뻗은 이에게 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라고 잡은 손을 뿌리친다면, 그건 사회복지사로서 실격이다.
우리가 내밀어야 할 손은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꽉 붙들어 당겨줄 강한 팔뚝이다.

일곱째, 우리가 보장해야하는 것은 비밀만이다.
비밀보장을 이유로 지금껏 들었던 모든 이야기를 비밀에 붙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다. 비밀만 보장하라는 말이다. 덕분에 이 비밀보장은 우선순위가 높은 다른 중요한 가치들과 상충했을 때 쉽게 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생명, 평등 등과 관계 있는 경우 사회복지사는 더이상 비밀보장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혼자서만 고민하려들지 말고,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생각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더 질높은 서비스를 클라이언트에게 제공할 수 있게된다. 진정 클라이언트를 위한다면 제한적인 전문가들과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공유하면서 토론할 필요가 있다.

이상 일곱가지 원칙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이는 원칙을 지킨다는 빌미로 게으름을 피울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경계다.
만일 당신이 전문가로서의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한다면 지금 자신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 언제나 되짚어보고 되물어보라. 이 7가지 원칙은 결국 도달해야할 지향점으로써 어쩌면 평생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억지로 이 원칙들을 비틀고 지금 할 수 있는 낮은 단계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게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이상적인 사회복지사의 God Eyes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Biestek의 7대 원칙 뒤집기 v1.1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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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복지란 .... 사회복지의 주체와 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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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가 하나의 개념을 정의하는 기본 요소에 대해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정의란 어떤 개념의 내용이나 용어의 뜻을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도록 명확히 한정하는 일, 또는 그 개념이나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사회복지를 정의내리려면 사회복지가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도록 명확히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 우선이다. 또한 그러한 구분을 하기 위해서는 광의보다 협의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리 언급하지만 여기서 사회복지란 협의의 사회복지, 즉 사회복지 서비스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여기서는 사회복지의 정의를 주체와 객체(대상), 내용, 목적(방향성)이라는 세가지를 중심으로 정의해보고자 한다.

첫째, 사회복지의 주체는 사회복지사다. 사회복지사가 아닌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사회복지가 아니란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각주:1] 우리는 사회복지사가 아닌 사람들이 행하는 활동들을 자원봉사, 자선사업 등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사회복지사란 사회복지전문가를 말하며, 충분한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한번 전문성과 의무와 책임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해 볼 필요가 있다.
전문성, 전문가, 전문직 등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요건들이 바로 지식, 기술, 가치, 조직이라는 네가지 개념이다.[각주:2] 그것들이 명확히 전문가로서 타인들과 구분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한명의 전문 사회복지사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전문가라고 우기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자기반성이며 성찰인 것이다.
우리가 대학을 통해 배우는 것들은 결코 적은 분량의 지식이 아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관계를 맺고, 사정하고, 평가하는 지식과 기술은 결코 낮은 수준의 것이 아니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쉬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에 아무나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 즉 자원봉사자나 실습생들과 같은 이들이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그들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올바르게 슈퍼비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회복지 전문가라고 얘기할 수 있다.

또하나 의무와 책임이 주는 무게는 무겁다. 아직까지 사회복지사의 선한 의지(Good Will)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회복지 해보니 그거 별거 없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나, 몇년동안 봉사활동 해보니 내가 준전문가라는 자원봉사자의 얘기를 들을 때면, 독려차원에서 웃고는 있지만 씁쓸한 양가감정을 느끼곤 한다.[각주:3] 이러한 이야기들은 사회복지사에게 주어지는 책임을 간과했기에 나오는 발언들이다. 이럴 때면 되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각오로 그 일을 하고 있냐고.
비록 아무리 선의로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 사회복지사를 찌르는 경우, 그 책임은 고스란히 본인의 몫이다. 일례로 전혀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에, 멱살을 잡히고, 맞고, 협박을 당하고, 돈을 물어야만 하는 사례를 보기도 한다. 또한 사회복지사에게 있어 사회복지사업이 생계인 만큼 그 책임도 무겁다. 포기해야할 것도 많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하다고 믿기에 해내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문성 그리고 책임과 의무가 존재하는 한 사회복지의 주체는 사회복지사이다.

둘째, 사회복지의 객체는 클라이언트다. 난 클라이언트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에서 클라이언트라하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 혹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범주를 명확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대부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복지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지금 현재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하나의 속성을 갖는다.
한편 그것이 영원히 해결불가능하다면 그것 또한 대상이 될 수 없다. 사회복지가 만능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복지사의 개입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만이 대상이 될 수 있다.[각주:4]

또한 사람에 초점을 두었을 때 그 사람이 갖는 속성을 또하나의 특성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문제가 위에서 언급한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모든 이들이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영어사전을 살펴보면, Client ① (변호사 등의) 의뢰인 ② (상인의) 고객, 단골 ③ 클라이언트,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개념을 추론할 수 있다. 바로 대상자의 자발성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서 그 해결을 의뢰한 사람만이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다. 가만히 집에 앉아서 모든 걸 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절대로 클라이언트가 될 수 없다. 사회복지실천의 기본원칙에서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두가지 관점에서 난 클라이언트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상에서 사회복지의 주체와 객체를 통한 기본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
사회복지란 쉽게 말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인데, 그 어려운 사람이 클라이언트,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사회복지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이다.

To be Continued...

  1. 물론 여기서 자원봉사 또는 자선사업 등이 갖는 역할과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폄하하고자함은 아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자원봉사자 후원자 등은 사회복지사에게 있어 또하나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사회복지의 대상은 아니지만 사회복지사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주체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복지사는 중개자(broker)로서 그들이 갖는 인적, 물적, 환경적 자원을 도움이 필요한 클라이언트에게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진다. 이어지는 내용을 계속 따라가보자. 또한 사회복지조직을 제외한 시민단체와 같은 민간조직의 사회복지영역으로의 확장에 따르는 개념의 문제 또한 다음 기회에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2. ① 비전문가라면 알기 힘든 지식 ② 비전문가라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기술 ③ 고유의 바람직한 가치와 올바름에 대한 윤리를 갖추고 있을 것 ④ 마지막으로 동일한 지식, 기술,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조직이 존재할 것 [본문으로]
  3. 이러한 이야기들은 주로 우리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 중 의식주에 관련되어 있는 1차적 서비스와 정서적 서비스와 관련하여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가 어디 그것들 뿐이던가? 하물며 그런 일일지라도 관공서, 유관기관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것들은 전문가로서의 신뢰가 밑바탕되지 않으면 시도조차 못하는 일도 많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본문으로]
  4. 덧붙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사회복지는 너무 광범위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오히려 그 정체성에 혼돈을 겪고는 한다. 이런 부분은 그 범위를 축소했을 때 오히려 명확해질 수 있다. 사회복지는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빈곤에 대한 대응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빼도록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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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안나오는 어려운 클라이언트 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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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책에 안나오는 케이스들이 더 많다.
또한 책에 안나오니 특별한 해답이나 정답이 없다. 선배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도 나름의 노하우야 있겠지만 그것을 문서로 정리해 두지는 않는 듯하다.
실제로 더욱 갈고 닦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래에 나오는 어려운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방법은 책에는 안나오는 이야기이다.
사회복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마인드 맵 형식을 빌어서 정리해 보았다.
(※ 마인드 맵에 대해서는 http://jshever.tistory.com/161 포스팅을 참조하자)

하지만, 순수히 개인적 견해이므로, 사회복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기법만을 적용하는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으며,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

이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아래 내용을 읽어나가도록 하자. (다운 받아서 FreeMind로 실행)


[참고] 2009/04/23 - [[정보] 복지 이야기/[福] 강의록정리] - 책에 나오는 어려운 클라이언트 대하기


주요 카테고리 미리보기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마인드 맵을 다운 받지 않아도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여 확대하시면 전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인드맵 전체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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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술만 마시면 밥달라고 찾아오는 C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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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C씨
홀애비에 알콜중독!! 어디서 또 한잔하셨는지 아직 낮 2시 즈음인데 벌써 만취,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한다.
그리고는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면서 하는 이야기.

"남자가 혼자서 밥해묵기 처량한데, 밑에 (경로)식당에서 밥 좀 묵으모 안되겄나?"
"장애자는 밥주고 그라던데, 다리 콱 뿌사뿔까? 그라모 밥주나?"
"콤퓨타 뚜드리 보모 다 나온다 아이가? 거기 뚜드리 보소"


일관된 담당자의 답변!!

"아버님, 경로식당은 결식우려가 있는 저소득 가정의 60세 이상 지역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1급 장애인에 한해서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로식당 운영규정에 나와 있는 사항입니다. 여기는 아무나 식사하실 수 있는 무료급식소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이야기들..

"그런기 어디있어.. 서류갖고 와 보소"
"구청에 찾아갈까? 가서 물어보까?"


이쯤 되면 대화로는 해결이 안된다.
그래도 해야할 일은 해야겠기에, 몇번이나 물었던 사실을 또한번 물어본다.

"아저씨,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등본이랑 수급자 증명서 떼 오시면 확인하고 대상이 되면 등록해 드린다니까요."
역시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저씨 이야기도 들어드리면서 보낸 시간이 한번에 한 두시간.
일단 자리에 앉히고, 물이라도 좀 드리면서 술 깨길 기다리는데, 하루종일 마신 술이 어디 잠시사이에 깨나?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는 이야기 들어주면서, 어르고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내는게 할 수 있는 일의 다였다.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못 볼 꼴도 많이 보고, 욕도 많이 먹고, 그러면서 하루에 최고 4시간까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때로는 달래보고, 때로는 듣다듣다 못견뎌서 화를 내며 쫓아내어도 보고, 어느덧 한달즈음 지나서 또 찾아오면 그날인가 싶어서 마음도 다스려보고, 아니, 솔직히 그냥 쫓아내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몇년을 지속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의 노하우는 있다.

'술에 취해 서비스를 요청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대처한다.

술에 취하면 이성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대로된 대화나 상담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무조건 자기 얘기만을 늘어놓기 일쑤이며,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은 뇌의 기능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이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해야할 다른 많은 일들이 있지 않은가?
이때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책이다.
다만, 그냥 밖으로 내보내려 하면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첫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이름과 집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이것은 얘기를 잘 안한다면, 대화 중간중간에라도 꼭 확인해야한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확인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알아두어야 집으로 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둘째, 할 이야기가 있기에 찾아왔으니 일단 자리에 앉히고, 물이나 차를 한잔 마시게 한 후 10분 정도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때 절대로 상대방의 이야기 중간에 토를 달거나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얘기가 길어지니 맞장구 치면서 그냥 끝까지 들어주어라. 다만 지킬 수 없는 섣부른 약속을 하게 되면 곤란하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여 다음날 몇시에 전화드릴 것을 약속하거나 맨정신에 다시 내방해줄 것을 약속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재차 서비스가 제공될 것을 확인한다고 해서 "그게 아니구요"라며 다시 설명하려 들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하고 일단 물러나라.

셋째, 대화시 주의할 점은 클라이언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거나, 몸을 앞으로 기울이지 마라. 상당히 위협적이거나 거부적인 느낌을 주게 되어 클라이언트의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 폭력적인 클라이언트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넷째,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싶으면 더이상 들을 얘기가 없다. "네, 말씀하신 사항은 잘 알았습니다."라고 말한 후 "이제 저도 해야할 일이 있으니 이만하고 아버님은 댁으로 가시는게 좋겠습니다."라고 명확히 이야기하라.
대충 얼버무리는 것은 좋지 않다. 명확한 어조로 분명히 알아듣게 얘기한 후, 부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첫번째 단계에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관차로 집으로 데려다 주거나 택시를 태워준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문밖에서 배웅한다.

다섯째, 안나가려고 버티는 경우는 냉정하게 말하며 쫓아내어라. 안나갈 이유가 없는데 버티는 경우는 명백히 업무방해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 정도일 경우에는 이미 대화로 상대할 수준을 넘었으며, 술이 완전히 깨기 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태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복지시설에서 건물 밖으로 끌어내어라. 보통의 경우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못가누기 때문에 쉽게 끌려 나가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냥 112에 신고해서 집으로 귀가조치 시킨다. (복지시설에는 사회복지사 보호를 위해 진짜 CCTV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술의 기운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복지관의 문턱을 넘어올 용기가 없는 사람. 그래서 술을 마셨는데, 본래 해야할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만 하는 경우. 실제로 그런 클라이언트를 만난 경험이 있다.
100명의 주정뱅이 속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진짜 도움이 필요한 소심한 클라이언트 단 한명 때문에 우리는 쉽게 취객을 쫓아내지 못한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복지마인드다. 이럴 때를 위해 처음 복지시설을 술이 취해 찾아온 클라이언트라면 최소한의 연락처의 인적사항을 확보하여 다음에 꼭 한번 맨정신일 때 상담을 해보도록 하자.


(뒷이야기)~~~

나중에야 안 이야기지만, 그 C아저씨는 등본상으로도 60세가 넘었고, 실제 나이는 65세라고 한다. 게다가 독거노인.
진즉에 서류 챙겨오셨으면 무료급식 가능할 대상이건만..
술이 들어가 있으니, 당췌 기억을 못하고, 우째우째 서류 겨우 만들어서 해드리니 그제야 좋다고 얼굴에 미소가 돈다.

하지만 X버릇 남주나? 술만되면 여전히 찾아와서 온갖 불만을 털어놓고, 경로식당 담당자를 찾는 C아저씨..

 "동생, 사랑하는 동생, 종씨끼리는 다투는거 아이다. 나 간다"

응? 나는 J씨인데... 우짜다 C씨랑 종씨가 되었을꼬?
어떨 때는 니는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가, 어떨 때는 사랑하는 동생이라고 했다가..

오늘도 술 취한 이용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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