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30. 15:39

사회복지사 대상 인권 강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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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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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무릎 연골 파열로 봉합수술을 하고 나니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달라졌다.”

생전 처음 목발이란 것을 짚어보게 되면서 그 낯선 느낌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낮은 턱 하나가 내 이동을 방해했고, 위험하게 만들었다. 잘못된 목발 짚는 방법은 겨드랑이를 아프게 했고, 이후엔 다시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비록 퇴원은 했지만, 소파를 중심으로 반경 몇 미터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바지를 벗는 일, 머리를 감는 일 등의 일상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은 상당히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기어이 혼자 머리를 감아보겠다고 낮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에 의지한 채 옷을 다 벗고 해야하는 샤워 아닌 머리감기와 이후 다시 입어야 하는 속옷에 대해 아내는 그냥 나와서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벌거벗은 채 목발을 짚고 거실을 가로질러야 하는 행위는 ‘수치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장애인복지를 수년간 해왔으며, 사회복지현장에서 그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만심' 또한 무너져내렸다. 내가 얼마나 겉으로만 그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있었던가에 대한 절절한 반성도 뒤따랐다. 그랬다. 그들에게 있어 인권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옷을 입는 당연한 일련의 과정 속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타인의 배려 또한 무너지는 자존심과 수치심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하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겨우 목발에 익숙해질 무렵, 아침부터 쏟아지는 늦여름의 빗줄기는 또 하나의 숙제가 되었다. 병원을 가기 위해 나선 나는 목발을 짚은 두 손 때문에 우산을 받쳐 쓸 수 없었고, 결국 비를 맞으며 걷을 수밖에 없었으며, 불쑥불쑥 나타나는 미끄러운 바닥에 몇 번이고 휘청거려야만 했다. 겨우 2층에 있는 병원진료실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엘리베이터는 왜 그리도 더디기만 하던지. 그리고 진료를 마친 후 나오려 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굽히거나 디딜 수 없는 왼쪽 다리 덕에 닫을 수 없는 화장실 문은 한없이 야속하기만 했다. 혹여 누구라도 들어올까 부들부들 문고리를 붙잡고 늘어져야만 했던 상황이 서글프기 그지 없었다.

사회복지 실천에서는 당사자의 참여,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강조한다. 인권 또한 그러하다. 사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일들이 아주 많다.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사회복지사 등이 이를 대변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끊임없이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 그 발견을 위해 직접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 거기에서 출발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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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회권의 현황과 과제 - 조국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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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과 관련하여 여러 전문가들의 논문을 조국 교수님이 엮은 책입니다.

사회권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과 논의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몇몇 챕터에 대한 리뷰를 공유해봅니다.
인권과 사회복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경험이 되시길 바랍니다.

 

[Review] 한국의 사회복지 지표와 사회권 현실(남기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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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법으로 본 한국의 노동과 사회보장(강성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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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회적 기본권의 법적 성격(김복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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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회권 규약의 발전과 국내적 함의(이주영).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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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울시의 사회권 실천 현황(양호경).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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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 상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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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 [[楞嚴] 생각 나누기/[權] 사회복지와 인권] - 양심적 병역 거부


앞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설명을 통해 자유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와닿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유권의 확대가 가져올 사회권의 축소와 그 영향에 대해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사회권의 상실이 기존의 사회적 법 테두리가 보장해주던 많은 것들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그렇게 피부에 와닿지 않습니다. 사회권을 매우 피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맹점을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 3화는 꼬집습니다. 사회권이 생존권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인간다운 생활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 사회가 오랜 기간을 들여 구축한 기반시설을 마치 공기처럼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의 상실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운송, 상하수도, 전력인프라 등의 상실이라고 언급해도 그 결핍이 어떤 의미인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체감할 수 없고, 상상 또한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파가 없으면 당장 휴대통신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조명도 가전제품도 사용이 불가능하지요. 여기까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하수도와 배관시설이 없으면 몸을 씻을 수 없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치기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대소변을 처리할 방법도 없어지고, 나아가 어떤 불법적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섬뜩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유권 보장의 극단은 곧 사회권 상실의 극단과 맞닿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자유권적 관점에선 세금을 납부하지 않을 자유까지도 양심의 자유적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최소한의 생존권에 대한 보장을 상실한다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의 양날개는 자유권과 사회권입니다. 어느 한쪽 날개만으론 제대로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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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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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Robertson(2004)의 저서 「A DICTIONARY OF HUMAN RIGHTS」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p.44부터 p.45걸쳐 정의된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에는 몇가지 생각해봐야할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하 이탤릭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우선 인권을 얘기함에 있어 대전제 하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적 사고에서는 국가의 합법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우선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어떤 법이라도 지키기를 양심적으로 반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법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과는 별개입니다. 인권과 법의 차이라고 볼 지점입니다. 법은 사회적 합의이자 약속입니다.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법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양심에 따른 거부는 바람직하다 아니다와 같은 가치적 개념에서는 허용될 수 있을 지라도 옳다 그르다라는 윤리적, 규범적 개념에서는 현재로써는 수용할 수 없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 중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제 우리나라의 법에서 이를 인정하는 쪽으로 다루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편 일부에서는 양심[각주:1]이라는 표현에 강한 거부감을 가집니다. 그래서 나도 내 양심에 반하기 때문에 세금을 납부할 수 없다와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양심에 반한다면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에 따른 법적 책임과는 별개입니다. 

최근 안락사나 그 반대로 어떤 형태의 치료를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것 등과 같이 양심에 의한 거부는 점차 논의해야할 부분들이 늘어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주었으면 합니다.


그럼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가 왜 국제적으로 대두되게 되는가와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토록 논란이 되는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로 접으들면서 전쟁에서 일지라도 살인은 정당성의 경계에 있다는 인식이 보편적입니다. 국제법상의 경향에서도 자신의 행동이 합법적임을 확실히 하는 것에 대한 개인의 책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도 가능해집니다. 단, 이러한 추세는 전문 직업군인이라는 모병제에 근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징병제이라는 특수성에서는 그 적용에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해야합니다.

첫째, 양심적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

인권적 관점에서 이는 대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적용가능해야합니다. 징병제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하에서라 할지라도 종교적 이유 뿐만 아니라 비종교적 이유에서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양심에 대한 입증 책임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병역에 상응하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과 상응하는 수준의 대체복무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때 대다수가 대체복무를 선택한다면 국방부는 심각한 인력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완벽한 모병제가 아니라면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됩니다. 이는 국가와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할 부분입니다.



인권이 초법적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의 가치는 법률의 발전보다 앞섭니다. 때문에 인권은 법률을 이끕니다. 한편 그것을 법으로 만들고 함께 지키자고 약속하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해당 가치에 동의하면 법을 만들면 되고, 반대하면 법을 만들지 않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장을 열어놓는 것이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길일 것입니다.



※ 위키피디아를 통해 더많은 다른 이야기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양심적_병역_거부


  1. 양심 conscience 양심적 병역거부를 표현할 때의 양심은 영어 conscience입니다. 이는 'The moral sense of right and wrong, chiefly as it affects one's own behaviour : 주로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올바르고 그른 것에 대한 도덕적 지각' 즉 주관적인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양심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어 객관적 개념이라는 인식이 더 큽니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가 양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라면 병역을 이행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되는 것인가라는 논란도 이러한 차이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한편 이에 대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96헌가11) [출처] https://namu.wiki/w/양심적 병역거부/논란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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