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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3
느린 스마트(Slow Smart)
― 기술을 사람의 삶에 맞추는 사회복지적 디지털 전환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할 때 자꾸 속도를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했는가?
얼마나 최신의 시스템을 갖추었는가?
AI를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가?
얼마나 많은 업무를 자동화했는가?
성과를 이야기할 때도 비슷하다.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가?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었는가?
처리량이 얼마나 늘었는가?
이런 지표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복지에서 이것만으로 디지털 전환을 평가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최근 이 질문에서 ‘느린 스마트(Slow Smart)’라는 개념을 고민하고 있다.
느린 스마트는 기술을 천천히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느린 스마트라는 말은 기술을 무조건 느리게 도입하자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기술의 속도를 사람의 삶의 속도에 맞추자는 것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느린 스마트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느린 스마트(Slow Smart)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제공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한 사람의 삶과 필요에 맞게 천천히 조정하고 개인화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에게 더 유용해지도록 만드는 사회복지적 디지털 전환의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느리다’가 아니라 ‘사람에게 맞춘다’는 것이다.
왜 최신 기술이 항상 좋은 기술은 아닐까
노인복지 현장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쉽게 만난다.
새로운 기기가 들어온다.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용자는 그 기기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버튼이 너무 작다.
화면이 복잡하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손이 떨려 정확하게 터치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능을 배운다고 해도 몇 주 뒤 잊어버린다.
기술은 좋아졌는데 사람에게는 더 어려워진다.
이때 우리는 흔히 이용자에게 다시 배우라고 한다.
‘디지털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반복해서 사용하면 익숙해집니다.’
‘요즘에는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다.
왜 사람이 기술에 맞춰야 하는가?
기술이 사람에게 맞춰질 수는 없는가?
좋은 기술은 사용자를 바꾸는 대신 환경을 바꾼다
예를 들어 손이 떨리는 사람이 있다면 버튼의 크기와 간격을 조정할 수 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반복적인 안내나 알림을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기기를 사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오래된 태블릿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것은 첨단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술의 수준이 아니다.
그 기술이 그 사람에게 맞느냐이다.
나는 이것이 사회복지에서 말하는 개인화와 디지털 전환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개인화 서비스를 이야기하면서 더 정교한 AI, 더 많은 데이터, 더 높은 정확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개인화의 본질은 어쩌면 훨씬 단순하다.
한 사람의 특성을 알아차리고, 그 사람에게 맞게 환경을 조금씩 바꾸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술은 훨씬 인간적이 될 수 있다.
느린 스마트는 '새로운 것'보다 '이미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일이 되어버리기 쉽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새로운 기기를 사고,
새로운 앱을 설치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오히려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이미 있는 기술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오래된 태블릿이 있다면 그것을 다시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필요한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기존 시스템의 불편한 부분 하나만 개선할 수도 있다.
복잡한 프로그램을 새로 만드는 대신, 종이로 하던 한 가지 절차만 디지털화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실제로 불편해하는 한 지점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느린 스마트는 혁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의 단위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느린 스마트는 기술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계한다
기술 중심의 디지털 전환에서는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
느린 스마트는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한다.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어려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기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순서가 다르다.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느린 스마트에서는 기술의 성능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한 번에 완벽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서 고친다.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넣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능부터 시작한다.
사람이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계속 조정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점점 그 사람에게 맞아간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한 도구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하고 유용한 생활의 일부가 된다.
기술이 사람에게 적응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디지털 전환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많이 이야기했다.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를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활용하고,
AI를 도입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기술을 도입했는데 이용자가 더 불편해진다면?
업무는 빨라졌는데 관계가 줄어든다면?
데이터는 많아졌는데 당사자의 목소리는 작아진다면?
AI는 더 정확해졌는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디지털 전환의 성공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의 발전을 증명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사람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느린 스마트를 이렇게 생각한다.
빠른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기술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필요한 기술
사람을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
한 번에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서 계속 조정하는 것
결국 느린 스마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술을 늦추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앞세우자는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은 기술도, 더 빠른 기술도, 더 복잡한 기술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가장 좋은 기술은 사람이 기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사람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 전환의 질문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무엇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가?에서
이미 있는 것으로 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로.
그리고 결국,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더 좋기 때문에 만드는 것.
나는 그것이 사회복지에서 이야기하는 디지털 전환의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고민하고 있는 ‘느린 스마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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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2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 바이브 코딩 시대의 사회복지 기술윤리
이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예전처럼 어렵지만은 않다.
과거에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고, 개발환경을 구축하고, 데이터베이스와 서버를 이해하고, 오류를 하나씩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바이브코딩이라는 방식은 자연어로 원하는 기능을 설명하고 AI와 대화하면서 실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이제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간단한 업무도구나 신청 시스템, 기록 보조 프로그램 등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분명 좋은 변화다.
그동안 개발자에게 의존해야 했던 현장의 작은 문제들을 직접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기술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기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질수록 윤리의 진입장벽도 낮아져야 한다
기술을 만들기가 어려웠던 시대에는 개발자의 전문성이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했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나 상당히 쉽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다만 기술 쉬워졌다는 것이 단순히 개발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기술을 만드는 주체가 넓어졌다는 뜻이며, 이는 기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책임 역시 더 많은 사람의 몫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윤리적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만드는 기술이 사람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기관에서 AI를 활용해 이용자의 상담기록을 요약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자.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무엇을 물어야 할까?
개인정보가 안전한가?
당사자가 자신의 정보가 AI를 통해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AI가 잘못 요약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민감한 정보가 불필요하게 수집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AI가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원래 하지 않았던 감시나 평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술이 가능해지면 우리는 자꾸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이제는 거기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함께 붙여야 한다.
효율성은 좋은 가치지만, 유일한 가치가 아니다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효율성을 떠올린다.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고,
오류를 줄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사회복지기관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율성은 목적이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직원의 업무를 자동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하자.
업무량을 자동으로 계산하고, 응답 속도를 측정하고, 상담 횟수를 점수화하면 관리자는 훨씬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사회복지의 가치는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 이용자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준 시간이 실적에는 잡히지 않을 수 있다.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신뢰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데이터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기술은 측정하기 쉬운 것을 중요하게 만들고, 측정하기 어려운 것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함께 들어가는 과정이다.
더 정확한 기술이 언제나 더 좋은 기술은 아니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해 판단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AI가 복지서비스의 위험도를 예측한다고 하자.
기술의 정확도가 95%라고 하면 우리는 상당히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5%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묻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취약한 사람을 잘못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반대로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
더구나 AI의 판단이 기존 사회의 편견과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라면, 기술은 기존의 편견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반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AI를 도입할 때는 단순히 '정확도가 얼마나 높은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
누가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잘못된 판단을 되돌릴 수 있는가?
사람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남아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기술이 정확할수록 오히려 그 결과를 더 쉽게 믿게 된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사회복지사가 기술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는 바이브코딩이 사회복지 현장에 중요한 이유가 단순히 개발비를 줄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의미는 현장의 사람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기술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사회복지사의 역할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개발자에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세요.”라고 요구했다면,
앞으로는 사회복지사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는 동시에 작은 의미의 ‘기술 설계자’가 된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그래밍 능력만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 권리를 판단하는 능력, 위험을 예측하는 능력, 필요와 편의를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는 바이브코딩 시대의 사회복지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이 기술의 영향을 받는가?
누가 배제될 수 있는가?
어떤 정보가 수집되는가?
이 정보는 정말 필요한가?
덜 침해적인 방법은 없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
이 기술이 없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가?
모든 문제에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기술 자체에 매료되기 쉽다.
AI를 사용할 수 있으니 사용하고,
자동화할 수 있으니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모을 수 있으니 모으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니 만든다.
하지만 사회복지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존재가 아니다.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이 달라지는가이다.
사회복지의 기술은 사람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고, 더 안전하게 지원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바이브코딩 시대에는 질문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예전에는 [ 문제 → 기술적 해결책 ]이었다면, 이제는 [ 문제 → 기술이 정말 필요한가 → 필요하다면 어떤 기술인가 →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의 순서가 되어야 한다.
기술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큰 기회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만들지 않을 수 있는 판단력이다.
결국 기술의 성숙은 더 많은 것을 만드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무엇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지를 구별할 수 있는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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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1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 생체정보 근태관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다.

최근 한 지침(위 사진)을 보다가 생각이 많아졌다.
시간외근무를 인정하기 위해 지문인식 등 신체 일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통한 인증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관리하려는 것이니 필요한 것 아닌가?’
지자체나 법·제도가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있고, 현장에서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확한 근태관리는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조직과 노동자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다른 질문이 생긴다.
정확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모든 수단이 정당하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와 정책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선택했는지, 그 수단이 필요한 정도를 넘어 사람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노동자는 관리의 대상이기 전에 권리의 주체다
우리는 노동을 너무 익숙하게 생각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계약에 따라 일을 하고, 그 시간만큼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를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만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여러 권리를 가진 주체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이 권리인 이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태관리는 단순한 행정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은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권한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의 모든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근태관리를 위해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 어떤 정보를 수집할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관리할 것인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한 문제다.
특히 지문이나 얼굴과 같은 생체정보는 일반적인 비밀번호나 카드정보와 성격이 다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역시 생체정보에 대해 별도의 보호와 안전한 처리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의 「생체정보 보호 안내서」도 이러한 정보의 안전한 처리를 위한 점검사항을 별도로 안내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바꿀 수 있다.
카드를 잃어버리면 재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문은 바꿀 수 없다.
물론 생체정보가 유출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실제 시스템이 생체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저장하고 처리하는지에 따라 위험의 정도도 달라진다. 그러나 한번 노출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생체정보의 특성 자체가 더 높은 수준의 보호를 요구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정확한 근태관리라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노동자의 신체적·인격적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선한 목적이라고 해서 선한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것은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이었다.
물론 생체정보를 이용한 근태관리를 곧바로 ‘차별’이라고 규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영역이다.
다만 그 책이 던지는 중요한 문제의식은 여기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해치려는 악의가 없었다는 것과, 그 결과가 정당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지자체나 기관이 노동자를 괴롭히기 위해 지문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정한 시간외근무를 막고, 근무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며,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
좋은 의도와 정당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수단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기 쉽다.
‘정확하게 관리하려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직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데 왜 문제가 되는가?’
하지만 공정하게 적용되는 제도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한 제도인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불편을 주는 것이 공정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 불편을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별도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이 수단까지 사용해야 하는가?
목적과 수단은 따로 판단해야 한다
정확한 근태관리는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시간외근무를 했는데 기록되지 않거나, 하지 않은 근무가 인정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정확하고 공정한 근태관리는 노동자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목적이 정당한가와 그 수단이 정당한가는 별개의 질문이다.
그리고 수단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는 몇 가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목적은 정말 정당한가?
둘째, 이 수단은 정말 필요한가?
셋째, 같은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덜 제한하는 방법은 없는가?
넷째, 그 수단을 통해 얻는 편익과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다섯째, 내가 그 제도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 기준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은 존 롤스의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조직의 관리자일지, 노동자일지, 혹은 그 제도를 가장 불리하게 적용받는 사람일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이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롤스에게 무지의 베일은 개인의 사회적 위치나 이해관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원칙을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보다 공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이 질문은 의외로 현실적인 판단에 도움이 된다.
‘내가 관리자라면 이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라면 그래도 같은 기준을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관리의 편의를 누구에게 전가하고 있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고 싶다.
이 제도를 통해 편의를 얻는 사람과 부담을 감당하는 사람은 같은가?
조직 입장에서는 정확한 기록이 필요하다. 행정적으로도 일관된 시스템이 편리하다. 지문인식은 여러 방식 가운데 비교적 명확한 인증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조직의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에게 생체정보 제공이라는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의 비용과 불편을 누구에게 부담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직이 관리하기 편한 방법이라고 해서 그 편의를 노동자의 개인정보와 신체정보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조직의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나는 사회복지 현장이라면 이 질문을 더 민감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는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돕기 위한 실천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어떤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근태관리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DX)을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효율성을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해왔다.
더 빠르게 처리하고,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더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물론 중요한 가치다. 조직은 효율적이어야 하고, 사회복지기관 역시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더해야 한다.
이 기술은 얼마나 효율적인가?
에서 멈추지 않고,
이 기술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를 물어야 한다.
기술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는 사실과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해도 된다는 것 역시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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