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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8 초등교사의 자살로 살펴본 교육권 1
글
초등교사의 자살로 살펴본 교육권
아래는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하여 사실과 일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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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 자살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의 분노와 관심이 뜨겁다.
그리고 그 속에는 교사의 교육권이 있다.
여기서는 두가지를 챙겨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인권에서 말하는 교육권은 교육받을 권리를 말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은 가치의 개념이기 때문에 방법론으로 말하게 되면 궤도를 벗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 다시한번 전제를 다듬어보자.
인권은 교육할 권리가 아니라 교육받을 권리를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교육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타인을 교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것은 학교 선생님에게도 적용된다.
교사라는 직업이 있지 않느냐고?
아니다. 교사가 있어서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있어서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교육받을 권리가 있기에 이를 위해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의무교육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인 권리로 초/중등 교육은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해석해야 옳다.
교육받기 싫은데 어떡하냐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밥먹기 싫다고 안먹으면 되는가?
인권은 이렇게 얘기한다.
교육받을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 교육의 거부가 본인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권침해다라고..
이제 관점을 바꿔보면 이렇게 된다.
어린 아동들은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기본적인 교육을 이수할 권리(인권)를 갖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아동 본인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해당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이다.
이런 아동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교사는 아동을 훈육할 의무를 진다(권리가 아니다).
만일 교사가 아동을 훈육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동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아동을 양육할 책임이 있는 부모가 "우리 아이는 내버려두세요"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동학대이다.
즉, 아이가 급식 먹기 싫어하는데 먹으라 하는 것, 하기 싫은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은 아동의 훈육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학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학대이다.
인권에 대한 이해는 여기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관점들을 이해해도 남는 것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폭력은 우리사회가 금지하고 있다.
즉 신체적 체벌은 행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동의하면 되는건 아닐까?
체벌을 동의하는 것은 우둔한 선택이다.
또다른 사각지대를 낳을 뿐이다.
과거 4~50대 이상은 사랑의 매를 이해도 하지만, 또한 그런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의 기억 또한 갖고 있다.
거부하는 학생을 교육하고 훈육하는 것에 대해 그 방법론으로만 접근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주제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다음을 함께 살펴보자.
교사를 향한 아동들의 폭언과 폭력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또한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사실 1대1의 관계라면, 한쪽이 피하면 그만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1대 다수가 함께하는 학교생활에 있어, 다른 아동들이 문제 아동의 폭언과 폭력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 또한 아동 학대이다.
잠시 눈을 돌려 우리 사회의 범죄자들을 한번 보자.
그들에게도 사람인 이상 인권은 있다.
인권의 큰 줄기는 자유권과 사회권이다.
그들에게 제한되는 것은 자유권이고, 보장되는 것은 사회권이다.
그리고 자유권이 제한되는 이유는 타인의 자유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한편 교육권은 일단 사회권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사회권을 침해했을 때 사회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권은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최소한의 보장이기 때문에 정해진 교육과정을 이수해 사회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면 그를 위해 계속적으로 사회권 보장을 해야한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늦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
물론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이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우리 학교의 금쪽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의 역량으로 훈육하는 것이 어려운 수준이라면, 보호자의 책임하에 별도의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전문적인 치료의 과정을 밟고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이들을 위한 별도의 교육 과정과 이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차별이고 낙인이 아니냐고? 아니. 아동을 위한 교육권의 보장이다.
자.. 이제 과도하게 힘든 아동들은 전문 치료의 영역으로 보내고, 아직 사회화가 덜 된 우리 아이들에게 훈육을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잘못된 행동들을 제어하고 바르게 이끄는 것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수위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아동이 학교가기 싫다는데 학교를 보내는 것 혹은 학교에서 내보내지 않는 것은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가?
사실 아동을 의무적으로 9시부터 학교라는 공간안에 가두어두는 것은 아동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해석을 통해서 풀어낼 수 있다.
즉 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환경을 만들고, 그곳에서 교육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아동 교육을 위한 최적의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동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옳다.
아동의 폭언과 폭력에는 무방비하게 참을 수밖에 없는가?
아마 많은 교사들이 이 아이에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되돌려주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 아이가 더이상 그런 폭언과 폭력을 하지 않고, 교사의 언어적 지시에 충분히 따라줄 것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게 되지 않으니 그 다음 단계를 어찌해야좋을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교사와 아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이런 더불어 살아가야한다는 가치로 인해 많은 불편함들을 감내하고 지낸다.
그래서 심한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라면 우리는 일정의 규칙을 만들어 내고 이를 따른다.
만일 특정인이 유독 심한 고통을 호소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예외의 규정을 만들어 보호한다.
이를 개인의 자유(인권)를 침해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법에 따라 경찰은 이를 제압하고, 검찰은 이에 대해 처벌한다.
해당 개인의 인권이 제한되는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에게 법에서 금한 체벌의 권한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제압할 수는 있어야한다.
교사를 향한 아동의 폭언과 폭력은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교육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서 인공호흡을 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행위이지 성추행과 같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교육권을 위한 부적 강화는 정당하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 경험에 비추어 대안을 찾아보자.
범죄자를 대상으로 우리 사회가 선택한 방법은 격리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제압은 정당하다고 본다.
이를 종합하면 금쪽이에 대한 교사의 제압과 격리는 허용할만한 수준의 방법이라 판단된다.
돌고돌아 같은 이야기가 아니냐고?
다르다. 관점이 다르고 방향성이 다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사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받아야할 권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인권의 관점에서 오해없는 접근과 문제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그렇다면 이 인권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인권은 가치의 개념이기에 그 실천의 방식의 구체화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화는 앞선 대전제 아래에서 우리사회의 합의를 통해 도출된다.
마치 사회복지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룩하는 방식을 우리는 "연대"라고 말한다.
개개의 직능에서 당면한 문제를 바라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치 개인 또는 특정 집단만의 문제로 인식되기 쉽다.
이번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혹은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문제들은 내용이 초등학교 교사를 가리키고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과 대응을 그대로 투영한다.
개인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이 이 사람을 대하는 이들의 문제에 대해 좀더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난 간호사들의 파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휴먼서비스, 즉 사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직군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우리 사회복지사처럼 말이다.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복지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보면서 한걸음 더 내 디뎠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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