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1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만들어도 되는가로
― 생체정보 근태관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다.

최근 한 지침(위 사진)을 보다가 생각이 많아졌다.
시간외근무를 인정하기 위해 지문인식 등 신체 일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통한 인증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관리하려는 것이니 필요한 것 아닌가?’
지자체나 법·제도가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있고, 현장에서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확한 근태관리는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그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조직과 노동자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다른 질문이 생긴다.
정확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모든 수단이 정당하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와 정책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선택했는지, 그 수단이 필요한 정도를 넘어 사람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노동자는 관리의 대상이기 전에 권리의 주체다
우리는 노동을 너무 익숙하게 생각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계약에 따라 일을 하고, 그 시간만큼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를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만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여러 권리를 가진 주체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이 권리인 이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태관리는 단순한 행정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은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권한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의 모든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근태관리를 위해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 어떤 정보를 수집할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관리할 것인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한 문제다.
특히 지문이나 얼굴과 같은 생체정보는 일반적인 비밀번호나 카드정보와 성격이 다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역시 생체정보에 대해 별도의 보호와 안전한 처리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의 「생체정보 보호 안내서」도 이러한 정보의 안전한 처리를 위한 점검사항을 별도로 안내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비밀번호가 유출되면 바꿀 수 있다.
카드를 잃어버리면 재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문은 바꿀 수 없다.
물론 생체정보가 유출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실제 시스템이 생체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저장하고 처리하는지에 따라 위험의 정도도 달라진다. 그러나 한번 노출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생체정보의 특성 자체가 더 높은 수준의 보호를 요구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정확한 근태관리라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노동자의 신체적·인격적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선한 목적이라고 해서 선한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것은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이었다.
물론 생체정보를 이용한 근태관리를 곧바로 ‘차별’이라고 규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영역이다.
다만 그 책이 던지는 중요한 문제의식은 여기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해치려는 악의가 없었다는 것과, 그 결과가 정당하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지자체나 기관이 노동자를 괴롭히기 위해 지문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정한 시간외근무를 막고, 근무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며, 모든 노동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
좋은 의도와 정당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수단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기 쉽다.
‘정확하게 관리하려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직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데 왜 문제가 되는가?’
하지만 공정하게 적용되는 제도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한 제도인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불편을 주는 것이 공정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 불편을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별도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이 수단까지 사용해야 하는가?
목적과 수단은 따로 판단해야 한다
정확한 근태관리는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시간외근무를 했는데 기록되지 않거나, 하지 않은 근무가 인정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정확하고 공정한 근태관리는 노동자에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목적이 정당한가와 그 수단이 정당한가는 별개의 질문이다.
그리고 수단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는 몇 가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목적은 정말 정당한가?
둘째, 이 수단은 정말 필요한가?
셋째, 같은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덜 제한하는 방법은 없는가?
넷째, 그 수단을 통해 얻는 편익과 부담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다섯째, 내가 그 제도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 기준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은 존 롤스의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조직의 관리자일지, 노동자일지, 혹은 그 제도를 가장 불리하게 적용받는 사람일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이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롤스에게 무지의 베일은 개인의 사회적 위치나 이해관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원칙을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보다 공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이 질문은 의외로 현실적인 판단에 도움이 된다.
‘내가 관리자라면 이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라면 그래도 같은 기준을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관리의 편의를 누구에게 전가하고 있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고 싶다.
이 제도를 통해 편의를 얻는 사람과 부담을 감당하는 사람은 같은가?
조직 입장에서는 정확한 기록이 필요하다. 행정적으로도 일관된 시스템이 편리하다. 지문인식은 여러 방식 가운데 비교적 명확한 인증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조직의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에게 생체정보 제공이라는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의 비용과 불편을 누구에게 부담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직이 관리하기 편한 방법이라고 해서 그 편의를 노동자의 개인정보와 신체정보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조직의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나는 사회복지 현장이라면 이 질문을 더 민감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는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돕기 위한 실천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어떤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근태관리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는 디지털 전환(DX)을 이야기하면서 오랫동안 효율성을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해왔다.
더 빠르게 처리하고,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더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물론 중요한 가치다. 조직은 효율적이어야 하고, 사회복지기관 역시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개입하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더해야 한다.
이 기술은 얼마나 효율적인가?
에서 멈추지 않고,
이 기술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를 물어야 한다.
기술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는 사실과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해도 된다는 것 역시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