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시설 실무 법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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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행 법령 중 사회복지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법령은 얼마나 될까?
로앤비(http://www.lawnb.com)을 통해 검색을 시도해 보았다.

 

법령 7개, 조문 제목에 사회복지가 명시된 조문은 26개, 조문 내용에 포함된 것은 284개, 부칙 86개, 별표서식 27개인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법령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포함하여 검색된 결과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사회복지사업법,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3개이며, 보건복지부령으로 제정되어 있는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 규칙을 포함하면 4개로 압축할 수 있다. 그리고 “복지”가 들어간 법령은 총 63개이지만, 사회복지 관련법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사회복지사업법 제2조에 따른 25개 법령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

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나. 아동복지법

다. 노인복지법

라. 장애인복지법
마. 한부모가족지원법

바. 영유아보육법

사.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아. 정신보건법

자.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차. 입양특례법
카.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파.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하.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거. 농어촌주민의 보건복지증진을 위한 특별법
너. 식품기부 활성화에 관한 법률

더. 의료급여법

러. 기초노령연금법

머. 긴급복지지원법
버. 다문화가족지원법

서. 장애인연금법

어.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처.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커. 장애아동 복지지원법

 

한편 조문내용에 “사회복지시설”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조항을 모두 검색해보니 법령 1개, 조문은 8개, 조문 내용에 포함된 것은 110개, 부칙 9개, 별표서식 5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법령들을 검토해 나가다보면 사회복지시설이 해야하는 법적 준수사항들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그 내용들을 정리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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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H할머니의 사무실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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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할머니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으십니다.
왼쪽귀도 어두워 가까이 대고 크게 말씀을 드려야만 알아들으시지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복지관을 힘겹게 올라오셨습니다.

 

"사무실에서 뭐 나온거 있다고 했다하던데.."

 

밑도끝도없는 한마디에 사회복지사들이 분주해집니다.

 

사실 사회복지관 직원들이래봐야 10명 남짓이 고작이지만, 제공되는 서비스가 많고 분야가 다양하다보니 다른 복지사의 대상자 현황까지 모두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남자가 전화했어요? 여자가 전화했어요?"
"몰라~"

 

혹시 다른 직원이 전화해서 서비스 제공을 약속드린건 아닌가 해서, 허겁지겁 전화를 돌리고 물어서 찾아보지만 우리 복지관에서 나가기로한 서비스 약속은 아닌거 같습니다.

 

이때부터 할머니 주위로 사회복지사들이 모여서는 할머니의 '사무실' 찾기를 시작합니다.

 

"혹시 관리사무소는 아니에요?"
"어? 이쪽은 안들려. 이쪽으로 얘기해~"
"관리사무소에서 전화한건 아니냐구요?"
"갔다 왔어. 거긴 아니라고 복지관 올라가 보래~"

 

관리사무소는 그냥 "아닙니다. 복지관 가보세요" 한마디로 우리에게 미루는 것으로 끝납니다.

 

"동사무소는 아닐까요?"
"몰라~"

 

계실 때 전화해서 확인하는게 필요할 듯하여, 부랴부랴 주민센터로 전화해서 H할머니께 연락드린 일이 있는지 수소문해 보지만 역시 거기도 아닙니다.

 

이쯤 되면 찾아주신 할머니도 슬슬 화가나시지 않을까요?
이리가면 저리가라하고, 저리가면 또 이리가라하고...
하지만 우리도 답답하긴 매한가지! 추측해 내기엔 너무나 정보가 적습니다.

 

물론 오늘 H할머니는
"아이고, 바쁜데 미안합니다."
하시며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제가 다 안타까워 엘리베이터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혹시라도 알게 되면 꼭 다시 연락드릴게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리가라 저리가라에 지치셔서 저희에게 화를 버럭 내는 분도 계십니다.

 

"사무실이면 여기 아냐? 왜 몰라!"
"관리사무소에서 여기라며!!"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복지관의 계단을 올라오셨는데, 역정을 내시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됩니다.

 

오늘 H할머니의 사무실 찾기는 끝내 실패입니다.

 

하지만 H할머니의 사무실만이 아니지요.

 

"오늘 놀러간다매?"
"차 타로 이리 오라카던데"
"선물 준다꼬 받으러 오라던데 여(기) 아이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정확히 모른채 복지관을 찾아주시는 어르신들을 뵈면 양가감정이 듭니다.
그래도 복지관이라고 찾아주신데 대한 감사한 마음과 찾는 곳이 여기가 아닐 때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
그리고 혹여나 복지관을 사칭하는 이상한 곳에 따라다니시다가 속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함.

 

"아닙니다." 한마디면 될텐데, 내 일도 아닌데 어르신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손발이 되어주는 사회복지사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노력이 분노와 역정으로 되돌아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회복지사.

 

그들은 분명, 다음에는 꼭 "사무실"을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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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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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들어서만 네번째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있다.
이런 기사들이 나면, 나는 다른 것보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싶어 댓글들을 먼저 확인해 보곤했다.

 

한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
자살선택에 대한 부정적 해석,
사회복지전담공무원에 대한 입장 옹호,
일을 그만두지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질타섞인 의문,
사회복지사만 응시할 수 있는 전담공무원의 직위에 대한 분노,
남겨진 혹은 관련된 자의 입장에 대한 옹호섞인 우려..

이 모든게 댓글 속에 버무려져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것인가?

 

......

 
여러 생각들의 홍수 속에서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름아닌 생명의 존귀함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존귀하다는 생명, 그 생명을 스스로 끊기까지의 고통을 생각하면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가 가장 먼저여야한다. 죽음은 누구나 피하고자 한다. 그 누구도 신나서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분명 그 죽음은 피치 못할 여러 상황 속에서 내몰린 끝에 내린 최후의 발버둥이었으며, 아우성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타인을 돕는 일을 천직으로 선택한 이의 선한 죽음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모든 것에 앞서 그 죽음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이어 아쉬운 정부의 대응이다.
한 직종에서 연속적인 자살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해당직종에 대한 중대한 위기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문제는 명백했다. 부족한 인력, 체계적이지 않은 업무,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에게 쏟아지는 업무의 깔때기 현상, 과도한 민원인의 폭력 등이 산재한 현황이며, 그로 인한 과도한 업무스트레스는 결국 여러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는 수당인상, 가스총 지급 등의 초라한 대응을 대안이라고 내어놓았다. 필요한 것은 보다 철저한 원인분석이며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의 마련이다. 지금 이순간도 사회복지사는 온갖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계는 통렬히 반성해야한다.
사회복지사의 선한 죽음 앞에, 애도에 앞서 먼저 등장하는 여러 부정적인 반응을 볼 때면, 그간 우리는 국민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나 악플러를 욕하기에 앞서 안타까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옹호를 받지 못하는 우리의 위치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이게 선행되지 않는다면, 제5, 제6의 안타까운 죽음을 우리는 국민의 냉혹한 시선속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4월 소방공무원에 대한 '안전수칙 위반자 벌점제[각주:1]'가 큰 국민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에 반해 우리의 위치는 아직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국민, 정부, 사회복지계 모두 솔직한 담론을 통해 반성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우선 정부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자체를 개선해야한다. 복지와 사회복지는 엄연히 다르다. 복지와 사회복지를 구분하지 못함에서 소위 깔때기 현상이 생겼으며, 현장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업무과중을 초래했다. 철저한 업무분석을 통해 업무를 체계화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인력배치와 업무분장을 실시해야할 것이다.

 

한편 민간 사회복지현장에 비해 공공기관의 사회복지업무는 그 업무의 특수성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슈퍼비전 체계를 갖추고 있지못하다. 짧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역사로 인해 사회복지업무를 전담한 고위 공무원이 없는 현실에서 어떤 사회복지전문직에 대한 선배들의 슈퍼비전이 없는 채 대학 동안 혹은 일부 자격취득 만을 위해 배운 짧은 학문적 지식만 가지고 여러 클라이언트를 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보다 많은 교육의 기회와 슈퍼비전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업무가 갖는 이면의 위험적 요소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안전망 확보를 위한 제도 마련에 힘써야할 것이다. 이는 일부 폭력적인 클라이언트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위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정보를 다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와 인권의 보호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서비스는 결코 폭력과 협박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클라이언트의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지금껏 우는 아이 젖준다는 속담은 불변의 진리처럼 사용되어 왔다. 물론 사회복지는 온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그것의 획득은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폭력과 협박은 오히려 사회복지권에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끝으로, 무엇보다 사회복지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고 그것이 사회적 선의(Good Will)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임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는 그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며,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필요한 영역에 대해 그를 대신하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전문직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로 한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는 바로 그 역할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인적 선의도 중요하지만, 집단으로써의 사회복지사는 분명 하나의 노동자 집단이며, 그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이 필요한 직업임에 인식을 같이해야한다. 그 이후에야 사회복지사의 처우문제는 제대로 된 관점에서 달리보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3/04/15 - [[정보] 복지 이야기/[談] 복지비틀기] -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1. 지난 4월 소방방재청의 소방공무원 보건안전관리 규정(제21조)에 따른 '안전수칙 위반자 벌점제'의 실시가 이슈가 되 었었다. 현장 소방활동중 부상ㆍ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안전수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견책과 감봉, 정직 등에 처 하며, 소방대원의 순직시 함께 출동한 대원들이 견책 처분을 받게 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 었다. 이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선한 직업이기에 더했으며, 이들에 대한 행정편의적 부당한 처우에 국민은 함께 분노하고 성토했었다. 이에 5월 14일 소방방재청은 벌점제 폐지 및 규정의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에 이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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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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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나 사탕 좀 줘어~”
두 손을 포갠 채 아이처럼 벌리고는 나만 보면 사탕을 달라시며 씨익 웃으신다.
주름진 그 미소 사이로 담배 때문인지, 사탕 때문인지 온통 썩어버린 이가 보인다.
“할매, 담배 피지 말라니까~”
“안펴어~, 안필랑께 입이 심심해서 그랴~, 사탕 좀 줘어~”
“옆에 할매들이랑 노놔 묵을랑께 더줘어~”

 

“행님!! 바쁘네요?”
반짝 든 왼손과 함께 미소 지으며, 언제부턴가 장애가 있는 이 동네 청년은 늘 나에게 ‘행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하던 이 호칭이 어느새 익숙해져 있다.

 

“선생님, 좋아요?”
늘 자기가 좋아한다는 얘기를 의문형으로 말하는 이 친구는 지적장애인이다. 하지만 늘 밝게 깔깔 웃으면서 기분 좋은 애정표현을 한다.
이 이상한 사랑고백에 절로 입가에 스미는 미소를 감출 수 없다.

 

“샘예~ 이것 좀 자시보이소”
노인일자리 월급 받으셨다고, 복지관 직원들에게 기분좋게 한턱 쏜 요구르트는 무척 달콤하다.
“어머니~ 그냥 어머니 드세요”
거절도 해보지만, 다음달에도 할머니는 요구르트 한줄을 사들고 오실테다.

 

사회복지사를 힘나게 하는 클라이언트, 어쩌면 나를 진짜 천사가 되고 싶게 만들어주는 이들이 우리 동네에 있다.
한편, 사회복지사를 힘들게하는 이들도 역시 클라이언트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

 

“느거 하는 일이 뭐꼬? 콤퓨타 뚜드리 바라. 다 나온다 아이가?”
아침 댓바람부터 거나하게 취한 동네 아저씨는 술 한잔하니 밥 생각이 난다며, 어르신들만 이용하는 경로식당에서 밥 달라고 난동이다.

 

느닷없이 휘둘러진 목발에 모니터가 깨어지고 책상 위 서류들이 흩날린다.
“고마 콱 죽어뿌까? 이 다리마저 뽀사뿌믄 해주나?”
해당되지 않는 서비스를 달라며 한시간 넘게 계속되는 막무가내 우기기와 드잡이질에 몸도 마음도 멍이 든다.

 

“야이 XX야, 삐~~~를 삐~~해 뿔까”
오늘도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며 풀 곳 없는 한탄을 사회복지사들에게 쏟아낸다.
깨진 술병을 휘두르며 가해지는 위협은 이해와 공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생전 처음듣는 여러 욕설이 난무하고, 각종 폭력과 죽임에 대한 협박까지 듣게 되면, 말뿐임을 알고 있어도 이건 당췌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린 여자 사회복지사에게 행해지는 각종 성적 폭언들과 성폭행에 대한 위협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보려해도 결코 위로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이럴 때면 애써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이 선배로서 한심스러워진다.
그들을 향해 차마 싸우지는 못하고 열중쉬어 자세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젊은 사회복지사의 분노를 보며, 때로는 참다참다 펑펑 눈물 흘리고야마는 어린 사회복지사를 보며, 선배 사회복지사들이 그러했듯 더 단단히 영글어 갈 것을 믿지만, 차마 피지도 못하고 갖은 생채기에 시들어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어도 해줄 말이 마땅치 않다. 그 와중에 그들의 분노가 클라이언트로 향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된 감정을 느낄 뿐.

 

오늘도 고래고래 소리치며 싸우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복지관 앞에 버젓이 벌려놓은 술판에는 마음이 상한다.
그 사이, 돌잔치를 앞둔 내 아기는 인후염이 중이염이 되고, 다시 폐렴이 되어 입원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소식도 휴대폰 수화기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이 뒤섞인 채 오늘도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로서의 내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그들 또한 변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보이는 행복한 이들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코흘리개 꼬마였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스무살 숙녀가 되었고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는 자랑에 내 일마냥 기쁘기 그지없다.
동네 형아에게 ‘삥’ 뜯긴다고 울며 찾아오던 아이는 어느 새 군인이 되었으며 첫 휴가 나오자마자 복지관 들러서는 올려붙이는 늠름한 거수경례에 만원짜리 몇장 쥐어주며 등 두드린 두 손으로 대견함과 뿌듯함이 전해져 가슴이 벅찬다.

 

그 어떤 일보다 사람과 함께 하기에 웃음과 울음, 애정과 분노가 공존하는 일
좋은 일이라는 미명하에 타인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권은 쉬 무시되는 직업
많고 힘든 업무에 시달리며, 감정노동에 소진을 경험하지만 정작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직업

 

그럼에도 많은 사회복지사들은 이 일이 천직이라고 여기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소명을 다하고 있다.
어느새 어려움이 있을 때면 사회복지사를 찾는다는 것은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매김한 반면, 그것을 요구하는 방식에 있어 범죄와 다름 아닌 가장 낮은 수준의 폭력과 큰소리로 우겨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려는 모습 또한 여전하다. 하지만 이에 분노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려고 하고,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함께 울고 웃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이다.
지금껏 사회복지사는 국민(지역주민)을, 클라이언트를 인정하고 대변해주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기반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국민(지역주민)을 위해 클라이언트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거짓이 없다면, 이제는 역으로 그들이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사회복지사를 인정해줄 수는 없을까?
단지 믿어만 준다면, 그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의 곁에 서 있기를 피하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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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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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자살 사건이 사회복지계에서는 여전히 이슈이며, 지자체에서도 각종 대응마련을 위한 간담회를 비롯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모습을 연일 확인할 수 있다.

 

사회복지계에 핫이슈로 떠오른 안타까운 죽음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과 시간을 되돌려보았다.

 

용인, 성남에 이어 울산에서도 사회복전담공무원의 자살사건이 연일 터졌을 때, 안타까운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은 ‘그만 두면되지 왜 자살하냐?’, ‘사회복지사만 응시할 수 있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제한경쟁 속에서 쉽게 공무원 되어놓고 뭐가 힘들다고 그러느냐? 힘들지 모르고 선택한거냐?’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20여일이 지난 지금, 수많은 사회복지사들로 추정(?)되는 이들로 인해 도배되다시피한 댓글들에는 추모와 옹호의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이슈를 알고도 개인적 생각을 조심했던 것은, 이러한 자살에 이를 정도로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라는 자리가 현장의 사회복지사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며 이직을 통해 가고 싶은 곳이라는 사실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사회복지실천현장에서조차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사회복지사조차 공감못했는데, 일반 시민들에게야 오죽했을까?

 

이제 잠시의 시간이 지나, 굳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한 안타까운 사회복지사와 민관을 공히 아울러 사회복지 현장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명의 사회복지사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나가보고자 한다.

 

첫째,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사회복지전문공무원이다.
앞서 시민과 민간 사회복지사의 의견을 전하면서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은 사회복지업무를 일반 행정업무 즉 행정직과 직접 비교하여 업무가 많다고 처우는 열악하다는 식의 비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공무원 채용과정에서도 달랐고, 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입사를 했을터인데, 차별을 논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논해야할 부분은 사회복지업무가 갖는 전문성에 대한 인정이며, 행정직과 차별성을 갖는 업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적절한 대우와 처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행정직도 사회복지서비스의 대인서비스가 갖는 어려움에 대해 인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관련업무를 맡는 것을 기피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말이 사회복지업무는 허드렛일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에 집중해야한다.

 

소위 깔때기 현상이라 불리며, 사회복지통합관리망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업무는 모두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업무라한다. 넓게보면 이 세상에 사회복지 아닌게 무엇이냐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이니, 전문업무 영역의 애매모호함은 현장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에게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업무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상급자로부터 제대로된 슈퍼비전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며, 이러한 공공영역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업무는 점점 늘어가고, 사회복지사로서의 개인적 신념의 한계를 넘어선 업무과다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아니라 사회복지전문공무원으로의 대내외적 인정이다.

 

둘째, 사회복지업무의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
김해시는 4월 10일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15개 방안을 밝혔는데, 그 중 하나로 가스총과 전기충격기 등 호신장구의 지급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과잉대응이 아니냐는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한편 소셜워커 2013년 3,4월호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뢰받아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 진행한 클라이언트 폭력 피해 및 안전방안 연구결과가 실려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폭력경험은 전체 응답자의 95.0%에 이르며, 그 중 언어적 폭력 91.4%, 신체적 공격이나 죽음에 대한 협박은 61.1%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 6.3%는 수시로 당하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그 내용은 침뱉기, 뺨때리기, 밀기, 멱살잡기, 할퀴기 등 경미한 폭력에서부터 주먹이나 발로 때리기, 칼 또는 몽둥이 등 도구를 이용한 위협에 성적 폭력과 스토킹, 기물파손, 소송, 업무방해까지 그 유형은 매우 다양하며 심각했다. 심지어 강간 및 강간시도의 경험도 1.4%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65.2%가 직접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그 중 언어적 폭력이 53.6%, 신체적 폭력은 19.4%로 나타났다. 이러한 클라이언트 폭력으로 인해 사회복지사는 심리사회적, 신체적, 재산상의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복지사는 스스로 선택한 이 일에서 보람을 찾고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적이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고 탓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클라이언트의 폭력에 대해 기관의 대응 또는 사후조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응답이 전체의 69.5%를 차지했으며, 구두경고 26.4%에 그쳐 피해에 비해 대응은 경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사회복지사와 기관 자신은 이러한 클라이언트도 우리가 끝까지 안고가야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사회복지사들은 그들이 보다 더 클라이언트를 위해 잘 일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을 바랄 뿐이다. 클라이언트의 선의와 변화 가능성을 믿기에, 일부 클라이언트에 의한 폭력들을 애써 잊고 덮고 무던히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복지사이기에, 최소한의 안전을 바라는 것이 과한 요구는 아닐 것이다. 통계가 이미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결국은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확대가 곧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 어려움이 있을 때면 사회복지사를 찾는다는 것은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아직 이를 전문영역으로 인정하는데에는 많이 인색한 듯하다. 정작 본인이 쉽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업무를 고유의 전문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인정과 적절한 처우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이러한 인식이 보다 널리 국민들의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한편 클라이언트 또한 변해야할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권리라는 의식은 상당히 높아진 반면, 일부 클라이언트 중에는 그를 표현함에 있어 폭력이 범죄임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 수반되어야 함을 아직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일부 클라이언트는 가장 수준낮은 방식의 폭력과 큰소리로 우겨서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려하는 것일테다.

 

지금껏 사회복지사는 국민을, 클라이언트를 인정하고 대변해주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기반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국민을 위해 클라이언트를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거짓이 없다면, 이제는 역으로 국민이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사회복지사를 인정해줄 때이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_안타까운_죽음을_보며_v1.0.1.hwp

(오타수정 201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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